[포럼] 국민연금 개혁 `숫자놀음` 어림없다

[포럼] 국민연금 개혁 `숫자놀음` 어림없다
    입력: 2018-11-28 18:12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포럼] 국민연금 개혁 `숫자놀음` 어림없다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5년마다 장기재정을 추계하고 이에 근거하여 제도를 개선하도록 하고 있다. 5년마다 돌아오는 재정추계 및 제도개선은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인데 이에 대하여 책임지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간 얼마나 준비하였는지 의문이며 이를 책임지고 있는 여권은 제대로 고민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보건복지부안으로 제시된 안들은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가진 근본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는 점에서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복수의 정부안들에 대한 청와대의 논평이 국민연금제도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발언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는 계층간 형평성, 세대간 공평성, 지속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존재하며 정부안으로 제시된 개편안은 이에 대한 개선은 부족하며 점진적인 숫자 수정에 그친 모수(母數)개혁에 머물고 있다. 연금 구조 틀을 그대로 둔 채 기여율과 지급률만 일부 조정하는 방식으로 사실은 대동소이한 안이다. 적립금의 궤적, 고갈시점이 좀 달라지겠지만 결국 국민연금제도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구조적 결함은 눈감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구조적인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계층간 형평성이라는 점에서 국민연금은 안정적인 직장을 장기간 가진 수급권자와 불안정 노동자들간에 심각한 차별을 제도화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연금사각지대가 넓어 가입기간 10년을 달성하지 못한 근로자의 경우 수급자와의 차별이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가 보호해야 할 빈곤층은 내버려두고 중산층에 지원하는 강한 역진성이 나타난다.

둘째,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세대 간 공평성에 심각한 훼손을 가하는 형태로 설계돼 있다. 기여 대비 급부라는 수익비를 보면 현재세대의 경우 최소 1.4배에서 4.5배까지의 수익을 올리며 이는 미래세대의 기여금에 의해 유지되는 구조이다. 여기서 수익액 자체를 볼 때 부유층일수록 수급액이 커져 전반적으로 미래 세대의 중산층·빈곤층이 현재 세대의 부유층·중산층을 부양하는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근로세대들 중 중하위층이 그 이전세대들 중 중산층과 부유층의 노후를 책임지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셋째,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는 고령화 저성장의 경제체제에서 더 이상 재정적인 지속가능성(fiscal sustainability)이 없다. 국민연금은 수입에 비하여 지출의 증가가 급속도로 늘고 있으며 이는 기금고갈 후 지속적으로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빈곤층을 포함한 전국민이 내는 세수입으로 이를 일부 보전한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곧 다다르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연금수급에 있어서 대규모 감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복지부가 청와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복수의 안은 연금사각지대의 국민과의 형평성의 문제, 세대간의 착취의 문제, 수급액 총량의 지속적인 증가의 문제 어느 것 하나도 심각하게 고려한 모습이 나타나 있지 않다.

'국민연금제도를 부과식으로 전환하면 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라는 청와대의 말은 국민연금 메커니즘 자체에 대한 무지까지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과식과 적립식은 연금제도를 도입한 첫 세대에서만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부과식으로 수렴해갈 수밖에 없으며 국민연금의 문제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기금고갈 이후 연금의 수입과 지출이 같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는 수급액이 향후 급속히 증가하여 연금이 유지될 수 없다는데 있다. 연금기여율을 높이는 것이 국민의 뜻과 다르다는 것은 그러면 계속해서 부유층이 미래세대를 착취하고 있는 상황을 방조하자는 것인가. 국민의 뜻이라고 할 때 그 국민에는 청년층과 미래세대는 포함되지 않는 것인가 묻고 싶다.

제대로 된 공적연금이 설계되기 위해서는 제도가 가진 구조적인 모순을 개선하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공동체에서 한 집단이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때 상부상조하여 도와주고 나중에 그들이 공동체에 갚아나가는 것은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로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사회적으로는 혜택을 받아온 어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부담을 준다면 이는 사회적 착취(social exploitation)라고 할 수 있다. 이기적인 한 집단의 이해에 편승하여 눈치나 보는 것은 지도자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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