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칼럼] 국난 극복을 湖巖에게 묻는다

[박선호 칼럼] 국난 극복을 湖巖에게 묻는다
박선호 기자   shpark@dt.co.kr |   입력: 2018-11-25 18:02
박선호 금융정책부장
[박선호 칼럼] 국난 극복을 湖巖에게 묻는다
박선호 금융정책부장
"국민들 사이에는 욕구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한편, 경제적으로 철강이나 자동차 산업 등은 가동률이 저하되고 실업사태가 일고 있었다. (국제 경기 악화에) 합리적으로 제때에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노조의 맹렬한 반대로 생산공정의 합리화, 근대화는 실현될 수 없고,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다. 노사는 노동력을 파는 측과 사는 측이라는 계약상의 관계 머물고 있어, 종업원의 애사심을 바랄 수도 없고, 품질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 현실을 너무 예리하게 지적했다 싶다. 경영연구소 연구원도 경제학 교수의 분석도 아니다. 고 호암 이병철의 글이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불황에서 못 벗어나는 미국의 경제상황을 분석한 글이다. 어찌나 우리 현실과 닮았는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호암자전에 나오는 고인의 친서(親書)다.

호암은 미국의 현실에 비춰 당시 우리 한국의 나갈 바의 답을 일본에서 찾았다. 일본 경제는 빠르게 중후장대(重厚長大)의 기간산업을 정부와 기업들이 힘을 합쳐 축소하고 경박단소(輕薄短小) 산업으로 그 틀을 바꾸고 있었다.

경박단소의 대표적인 산업이 바로 반도체였다. 호암은 1983년 2월 도쿄 구상을 통해 반도체 산업 진출의 결단을 내린다. 오늘날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반도체 산업은 그렇게 이 땅에 뿌리를 내렸다.

자서전의 고백처럼 '힘겨운 결단'이었다. 1년여의 기초조사와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연구 검토 끝내 나온 결심이었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설비투자가 들뿐더러, 기술혁신 주기도 짧았다. 자칫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막대한 투자금만 날릴 공산도 컸다는 의미다.

결과는 수치가 보여준다. 한국은행이 분석한 '2018년 10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 따르면 10월 수출물량지수는 168.11(2010=100기준)로 전년동기대비 25.8% 상승했다.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다. 반도체의 호조가 큰 힘이 됐다.

안타까운 것은 작금의 우리 현실이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등을 고집해 국민의 욕구만 키웠지 실물 경제는 악화일로다. 노조는 힘으로 인사개입은 물론이고 경영판단까지 좌우하려 든다.

공기업에서는 직원 가족들이 대를 물려 일하는 '음서제'까지 판치고 있다. 호암의 말처럼 '나라의 곳간을 축내는 게 진정한 죄'다. 그 피해가 국민 모두에 미치는 가장 질 나쁜 도적이다.

더욱이 우리는 미국처럼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고 첨단 기술도 적다. 미국처럼 불황을 이겨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호암은 '우리가 잘 사는 길'도 고민했다. 1963년 5월 한 언론사에 한 기고다. "기업인들의 활발하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해 주는 것이 긴요하다". 그는 "나라의 혜택을 받고도 기업 하나 제대로 일으키지 못하는 게 죄"라며 '허다한 애로를 이겨낸 기업인'을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고 절규했다.

지난 19일은 마침 호암의 31주기였다. 가끔 찾는 교보문고 서가에서 삼성, 현대 등 국내 주요 기업의 '흑역사'를 정리했다고 하는 책을 보고 씁쓸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호암의 말처럼 "일하는 자에게는, 일하지 않는 자가 언제나 가혹한 비판자 노릇"을 하는지 모른다.

자서전에서 호암은 경영인으로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업은 영원한가? 이에 대한 답은 노다. 영원은커녕 짧으면 10년, 20년, 길어서 40년, 50년의 사이로 소장(消長)하고 있다." 호암이 찾은 답은 부단한 혁신과 도전이었다.

실제 삼성의 매 성장의 순간에는 혁신과 도전이 있었다. 삼성상회, 제일제당, 제일모직, 정말 삼성그룹의 성장은 도박의 역사라 할 정도로 위험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성공하는 기업이 그렇듯, 성공하는 국가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싶다.

다시 호암의 목소리다. "거듭 강조하고 싶다. 기업은 결코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변화에의 도전을 게을리 하면 기업은 쇠퇴하기 시작하다. 그리고 일단 쇠퇴하기 시작하면 재건하는 것은 지난(至難)하다."

박선호 금융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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