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뉴로모픽칩' 시제품 공개
인간 뇌처럼 배우고 움직이기도
3D프린터 등 적용분야 무궁무진
인간 뇌처럼 배우고 움직이기도
3D프린터 등 적용분야 무궁무진
디지털 빅뱅
(1) 뇌처럼 작동하는 AI 반도체
디지털 기술이 세상과 산업을 파고들면서 새로운 문명이 열리고 있다. 과학기술과 IT기술의 진화는 실세계와 디지털 세상마저 결합하기 시작했다.
내년 각국에서 자율주행택시가 상용화되면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폭발적 변화가 자동차와 교통영역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또 5G서비스가 상용화돼 과거와 다른 초연결 시대를 열 것으로 보인다. 공공·산업·사회 각 영역에서 데이터를 축적해 보다 인텔리전트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공장·도시·농촌·우주공간마저 디지털화되고 있다. 기술기업과 연구자, 시민, 스타트업들이 보다 혁신적인 미래를 열기 위해 협업한다. 2050년께에는 AI 기술이 완성되고 기계가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디지털 신문명이 열리고 있는 현장과 주목할 만한 흐름을 시리즈로 싣는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 초록색 막대가 이리저리 회전하자 사람 뇌 속 신경세포(뉴런)와 시냅스 구조를 모방해 만든 AI반도체(뉴로모픽칩)가 막대 모양을 빠르게 익히기 시작했다. 화면 다른 쪽에서는 뉴로모픽칩에 심긴 뉴런이 막대 모양을 식별하는 과정이 나타났다. 반도체는 막대의 각도를 학습한 후 6가지로 분류했다. 칩은 사전에 학습하지 않은 채 주어진 시각적 자극만으로 3~4분만에 막대의 각도를 익혔다. 이후 터치팬을 이용해 막대 모양을 그려 보이자 칩의 특정 뉴런 부분만 활성화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 연구진은 사람 뇌와 비슷한 방식으로 배우고 작동하는 뉴로모픽칩 시제품을 23일 공개했다. 장준연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지금까지 AI는 SW로 구현했지만 반도체로 구현하면 차원이 다른 성능과 저전력을 구현할 수 있다"면서 "컴퓨터 도움 없이 자가학습 가능 뉴로모픽칩을 2021년 양산 직전 단계까지 완성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반도체의 미래는 'AI'=이번에 선보인 칩은 1개 코어에 뉴런 1000개와 시냅스 20만개를 담았다. 내년에는 여러 개 코어를 집적한 칩을 만들고 2021년에는 뉴런 100만개와 시냅스 2억개가 집적된 칩을 완성할 계획이다.
우리 뇌는 거대한 컴퓨터 같이 동작한다. 1000억개가 넘는 뉴런은 시냅스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다른 뉴런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동시에 작동해 순식간에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한다. 1000억개의 뉴런과 100조개 이상의 시냅스가 병렬적으로 연결돼 약 20와트의 저전력으로 기억·연산·추론·학습 등을 동시에 수행한다. 뉴런은 전기 스파이크를 주고받고 시냅스 연결강도를 조절해 정보를 처리한다.
구글 알파고, IBM 왓슨 등 SW AI는 엄청난 HW자원을 필요로 하고 직관적 연산과 판단은 모방이 힘들다. 뇌신경구조를 모방해 칩으로 만들면 크기와 전력소모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장준연 소장은 "자율주행 전기차가 SW AI의 판단으로 달릴 경우 GPU 등 HW가 너무 많이 필요하다 보니 실제 전기차 구동에 필요한 전기보다 AI가 더 많은 전기를 소모할 것"이라면서 "HW AI는 전력소모가 훨씬 적어 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장 소장과 함께 연구책임자를 맡은 뇌과학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한번 충전으로 200㎞를 가는 자율주행 전기차가 SW AI를 채택하면 20분마다 충전해야 할 것이라는 계산을 내놨다.
장 소장은 "결국 궁극적으로 HW가 답이라는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시각 관련 정보를 처리하는 뇌 후두엽 시각피질의 기능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T 공룡인 IBM과 인텔도 AI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인텔이 지난해 선보인 '로이히'는 KIST가 개발한 것과 같이 자가학습 기능을 담았다. 미 국방성 DARPA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1억달러를 투자해 개발된 IBM의 트루노스는 뉴로모픽이면서 자체학습이 아니라 외부학습이 필요한 방식이다.
장준연 소장은 "자체학습이 가능하려면 뉴런 같은 스파이크 메커니즘이 구현돼야 한다"면서 "우리가 제작한 칩은 실시간 온칩러닝이 가능해 고도의 AI기술이 필요한 영역에서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로 작동하는 3D프린팅로봇·자동차·기차=미 해군과 록히드마틴은 AI를 심어 스스로 학습하는 3D프린팅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전투기 부품 등 오차가 있으면 안되는 부품을 3D프린터가 스스로 최적의 재료와 제조방법을 익혀가며 만들도록 하기 위한 것. 로봇은 부품 생산과정을 지켜보면서 소재와 제조방식이 올바른지 판단하고 문제가 있으면 수정해가며 최적의 결과물을 내놓게 된다. 특히 로봇은 스스로 학습할 뿐만 아니라 서로 배움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개발된다.
자동차는 자율주행차가 아니더라도 곳곳에 AI를 채택하고 있다. 손가락이 아닌 음성AI로 각종 기능을 작동하고 AI카메라와 지능형센서가 운전자의 상태와 차량 운행상황, 내부 상태 등을 판단해 적절한 대처가 이뤄지도록 돕는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선보인 2019년형 G70에는 12.3인치 3D 클러스터가 탑재돼 운전자가 VR기기를 쓰지 않아도 운전자 시각을 자동 인식해 다양한 정보를 3D화면으로 보여준다. 자동차 대시보드가 사실상 컴퓨터로 바뀌면서 업계는 AI를 핵심 알고리즘으로 심고 있다. 떼제베 운영회사로 잘 알려진 프랑스 철도공사(SNCF)는 자율주행차, 이동통신, IT기업들과 협력해 자율주행 열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25년까지 운영하는 모든 철도 구간을 자율주행화할 계획이다. 자율주행이 도입되면 같은 철로 위에서 30% 많은 열차가 달릴 수 있다. SAP·오라클 등 기업용 SW기업들은 SW에 음성인식 비서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간단한 작업을 스스로 하고, SW를 통해 포착되는 각종 업무정보를 AI스피커 등을 통해 음성으로 알려준다.
과학자들은 AI·로봇·바이오기술을 결합해 인간의 지능·오감·신체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기존 머신러닝에서 진화한 다차원 머신러닝, AI가 AI를 설계하는 메타AI,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이용해 정보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차세대 HMI(인간·기계 인터페이스), 중추신경계나 신체와 연동돼 작동하는 신체결합 로봇기술 등이 핵심이다.
김용균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수석은 "1999년부터 인터넷·3G, 2009년부터 모바일·LTE가 혁신의 키워드였다면 내년부터 10년간은 IoT, AI, 5G발 혁신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일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IoT를 통해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완벽하게 소통하고 지금 선보이는 AI기술들이 합집합으로 모아지는 2050년께에는 AI가 완성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강성철 KIST 의료로봇연구단장은 "AI는 인간의 능력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면서 "AI가 바이오, 로봇 기술과 결합해 인간의 신체·지능·오감 능력을 끌어올리는 인간증강 기술이 10년 내에 보편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공동기획
안경애기자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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