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文대통령의 지독한 `국회 패싱`

박미영 정치국제부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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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文대통령의 지독한 `국회 패싱`
박미영 정치국제부 정치팀장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에 너무 관심이 없다"는 말을 청와대 참모들로부터 심심찮게 듣곤 한다. 처음엔 그저 농으로 들었다. "그만큼 정책에만 골몰하시는 것"이라는 부연 설명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권좌'에 오른 대통령이 정치에 관심이 없겠느냐마는 문 대통령은 이전과는 다른 집권자, 민생을 더 생각하는 통치자라는 걸 부각하기 위해 한 말이겠거니 했다. 어쩌면 탈지역주의를 외치며 가치 중심의 새로운 정치를 외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의식한 나머지 그 그림자를 떨쳐내기 위한 의도적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그도 아니면 '정치'를 밀실야합, 당리당략, 말 바꾸기, 뒤통수치기 등의 집합체로 치부한 탓에 생긴 '결벽증'일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2년 차에 접어들고 보니 이젠 더 이상 '대통령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흘려 들을 수 없게 됐다. 대통령의 정치 기피증으로 인해 힘겹게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어서다.

'정치'는 집단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차이와 적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허용된 특별한 활동으로, 합의와 조정이 그 목적이자 목표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이 합의와 조정을 정당과 국회에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위임한다는 사실은 어느 정치학자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의회·정당을 우회해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선'으로 여기고 이를 정치로 인식하는 것 같다.

'국민이 원하는대로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여론을 더 중시했다. 공론조사를 앞세워 '인민위원회 방식'으로 밀어붙였던 탈원전 정책이나 국민청원 등이 대표적이다. 부처가 마련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퇴짜 맞추면서 "국민의 의견을 듣자"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기득권을 위한 정치를 하고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등치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권위주의로, 정치학자들은 이를 경계해왔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여론을 동원해 통치하는 정부는 나쁜 정부"라고 했고, 막스 베버는 "자신이 옳기 위해 여론을 명분삼아 도덕적 심판의 구도를 불러들이는 일은 정치적 범죄행위"라고 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뿌리인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마저도 국가가 국민을 동원하는 일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치의 기능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봤다.

문 대통령의 정치 기피증은 국회 무시로 이어졌다. 정부 출범 후 문 대통령이 국회를 찾은 것은 취임식과 예산안 통과를 부탁하기 위한 두 번의 시정연설이 전부다. 야당 인사와 따로 만난 기억은 없다. '국회에 언제든 조언을 구하겠다'던 취임사는 허공에서 사라진 지 오래고 이따금 국회를 향해 '호통'을 치기도 한다.

이제 문 대통령이 협치를 이야기할 때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문희상 국회의장이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대의 민주주의에서 국회를 무시하는 것이며, 독선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했을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 같은 대통령의 국회 기피가 우리 사회를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게 붙들어매고 있다는 점이다.

적폐청산이나 개혁은 물론 주요 정책은 최종적으로 입법을 통해 이뤄지는데 20대 국회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무조건 반대만 하는 야당과 거수기로 전락한 여당도 책임이 크지만 대통령의 국회 선긋기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명백한 직무유기다. 예산안 처리 시한은 채 열흘도 남지 않았는데도 국회의 카운터파트인 청와대 정무수석이 야당의원들과 접촉했단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예산안 처리 않고 버티면 국민들 여론이 좋지 않아 야당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배짱' 두둑한 소리까지 한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 순방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당신이 옳다'는 책을 읽었다 한다. 그러고선 트위터에 "공감과 소통이 정치의 기본이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내가 생각했던 공감이 얼마나 얕고 관념적이었는지 새삼 느꼈다"라고 썼다.

그렇다면 이제 공감과 소통의 상대를 지지자와 국민이 아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로 삼고 정치적 이견과 마주하길 바란다.

박미영기자 my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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