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약자 코스프레는 도깨비방망이인가

[이규화 칼럼] 약자 코스프레는 도깨비방망이인가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   입력: 2018-11-20 18:01
이규화 논설실장
[이규화 칼럼] 약자 코스프레는 도깨비방망이인가
이규화 논설실장
민노총이 오늘 총파업을 한다. 사업장의 생산차질은 물론이고 거리의 행인과 주민들은 확성기에서 터져 나오는 구호 듣기를 강요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란은 약과다. 국민들이 입을 정신적 스트레스는 종종 무시되지만 심각하고 광범위하다. 무소불위의 불법행위를 대하며, 또 공권력이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또 격심한 모멸감과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오늘도 검경의 대처는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러잖아도 국민들은 민노총의 고용세습을 보고 배신감을 갖고 있던 터였다. 치미는 화의 강도에 비해 국민들이 취할 수 있는 대응은 기껏 인터넷 댓글이나 달고 민노총 불법 시위에 반대하는 글이나 동영상에 '좋아요'를 누르는 데에 그친다. 출구가 봉쇄된 분노와 적개심은 우리 몸에 쌓여 치명적 화병이 된다. 그로 인해 국민 건강이 입는 해악은 생산차질이나 소음 차원을 뛰어넘을 것이다.

혹자는 이런 유무형의 피해에 대해 약자(弱者)의 호소인데 참아줄 아량이 없느냐 하겠지만, 전제가 틀렸다. 그러려면 불법 시위가 아니어야 하고 진짜 약자여야 한다. 사업장 점거는 노동조합법이 금지한 쟁의행위(37, 38조)이고 건조물침입죄(형법 319조)에 해당하며 재산권을 보장한 헌법(23조)까지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다. 민노총은 근로시간 탄력적용기간 확대 반대, ILO(국제노동기구)협약비준 선행조치 뿐 아니라 사법농단 척결, 국민연금개혁, 사회대개혁 같은 정치적 주장을 하고 있는데, 쟁의행위와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이다. 민노총이 노동조합인지 정당인지 헷갈린다.

민노총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이들은 "촛불혁명에 걸맞는 사회대개혁을 당겨오자"고도 한다. 자신들이 주도 세력으로 참여한 촛불집회를 통해 대통령 탄핵에 성공하고 집권했으니 그에 대한 지분을 내놓으라는 말이다. 민노총이 권력의 동업자라고 하는데 권력의 손발이 돼버린 검경이 어떻게 그들의 불법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나. 민노총은 어느새 80만 명의 조합원을 가진 단체가 됐다. 그 핵심 세력 간부 중에는 1억원을 넘는 연봉을 받는 상위 2~3%의 고임금자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민노총을 사회적 약자로 볼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민노총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동원력이 강한 조직으로 갑질 중의 갑질을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그런 조직이 약자 코스프레를 하니 국민이 울화통 터지는 것은 당연하다.

20여년 전 노동부를 취재하면서 민노총본부를 방문할 때마다 정책실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 민노총은 법외노조로서 정부가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때다. 민노총은 복수 상위노조가 왜 필요한지, 근로자 입장에서 유불리를 외국 사례를 들며 끈질기게 설득하려 했다. 자료에는 빨간색으로 자신들이 양보할 수 있는 절충안을 표시해놓기도 했다. 법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로키'였을 수도 있지만 당시 민노총의 지도부는 꽤 합리적이었다. 사정을 봐가며 진로를 모색했다.

현재 민노총이 그 뿌리에서 자란 것일텐데 왜 이리 딴판이 됐나. 지금 민노총은 설득력 있는 자료를 내지도 않고 내려는 노력도 않는다.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자기들은 자본의 탐욕에 희생된 피해자라고 코스프레 하는 것이 전략의 전부처럼 보인다. 민노총이 노조할 권리를 주장한다면, 같은 기준으로 사업주에게 파업에 합법적으로 맞설 대체근로 사용을 허용해야 이치에 맞다(노동조합법 43조 개정). 자신들에 유리한 사실은 침소봉대하고 불리한 것은 외면하고 축소하면 누가 옳다 하겠나.

민노총의 계산서 청구는 이제 시작이다. 이 정권 창출에 절대적 기여를 했고 그로 인해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 여기는 이들이다. 점거농성으로 대검찰청을 비롯해 전국을 다 들쑤셔놓았는데 다음에는 청와대 차례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이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민노총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진정 우군이라면 '적군'처럼 대하던 이전 정부에서의 행태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약자인 척하면 불법도 용인받는 봉건폐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문 정부의 경제사회정책들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임기 내내 민노총에 끌려 다녀야 할 것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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