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낙영 칼럼] 반도체 제2 치킨게임 대비하고 있나

[서낙영 칼럼] 반도체 제2 치킨게임 대비하고 있나
서낙영 기자   nyseo@dt.co.kr |   입력: 2018-11-06 18:04
서낙영 논설위원
[서낙영 칼럼] 반도체 제2 치킨게임 대비하고 있나
서낙영 논설위원
미국이 중국 푸젠진화반도체(JHICC)를 대상으로 자국 반도체 장비수출을 금지했다. 최근 접한 외신 가운데 가장 파괴력 높은 산업뉴스이자 정치뉴스라고 본다. 푸젠진화반도체는 중국이 2014년 이후 본격화한 이른바 '반도체굴기'의 상징적인 업체 가운데 한 곳이다. 이 업체는 중국이 메모리반도체의 핵심인 D램 시장 진입을 위해 만든 푸젠성의 국영기업이다. 중 반도체 자급 전략의 교두보 같은 곳이다. 미국이 지난 10월 29일(현지시간) 이 곳에 국가안보를 내세워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를 비롯 주요 자국 장비업체의 대중 수출 차단을 발표한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 벌이는 무역전쟁 속내의 한 단면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 원인은 겉으로는 양국간 무역에서 발생한 수출입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앞으로의 경제를 좌우할 첨단산업 주도권의 경제패권 다툼이라는 분석이 더욱 본질에 가깝다.

얼마 전 산업계 지인들과 모임에서도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 격화와 우리 반도체 산업간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일까를 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며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 맞지만, 부분적으로 우리 반도체 산업만 보면 중국 반도체의 현실적 위협에 직면할 시간을 벌어줄 호재일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 2009년 독일 키몬다의 파산과 2012년 일본 엘피다의 도산을 불러온 반도체 치킨게임이 다시금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섞인 분석까지 나왔다. 미국까지 나서 실질적 위협으로 인정한 중국 반도체의 부상은 필연적으로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을 불러오며, 업계 전반을 치킨게임으로 몰아갈 뇌관이다.

실제 올 하반기 이후 반도체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며 고점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 역시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4분기 이후 D램 가격 하락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열어놨다. 물론 이는 계절적 요인 등에 따른 것으로,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의 확산, 인공지능(AI)·자율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반도체 수요는 지속적 증가가 예상된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지속적 수요 증가는 투자확대와 공급과잉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치킨게임의 출현을 추동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과거 키몬다와 엘피다의 몰락을 가져온 치킨게임 사례가 그것을 말해준다. 특히 2025년까지 1조위안(164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반도체 산업에 쏟아 붓는 중국이 결정적 변수다. 중국은 2015년부터 올해까지 자국 전역에서 19개 이상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반도체 인해전술'인 셈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가 무서운 것은 시장의 수요 공급의 원칙이 아닌, 자국의 이익과 전략에 따라 시장을 조정하겠다는 데 있다. 중국 정부가 나서서 수요를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당장 D램만 봐도, 시장 원리로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의 3자 구도는 사실상 깨지기 어렵다. 후발주자가 수조원을 투자해 몇 년에 걸쳐 생산라인을 짓고 양산을 시작해도, 선발주자는 이들 제품을 바로 구형으로 만들며 가격 경쟁력과 제품력에서 저 먼치 앞서 달린다. 이것이 장치산업인 반도체의 특성중 하나다. 수조원 투자가 수익을 내기는커녕 매년 감가상각만 커지는 데 어떤 기업이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업들은 죽기살기로 치킨게임을 벌이며 승자의 자리를 추구했고, 2008년 10개에 달했던 D램 생산기업이 현재 구조로 재편됐다. 그 결과 3개 기업이 한해 수십조원의 상상하기 어려운 이익을 걷어 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50%를 차지하는 수요를 기반으로 정부가 선후발 격차를 직접 메우고, 자신만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자립을 하겠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고, 가전과 LCD 등은 우리와 격차가 사실상 없다.

우리와 중국간 반도체 기술격차는 3~5년 정도라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세부적으로 낸드플래시가 D램보다 좀더 일찍 우리를 추격해 올 여지가 크다. 중국 3D낸드 선두주자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YMTC)가 우리의 2년여 전 수준까지 쫓아왔다.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종국에는 중국발 반도체 치킨게임은 불가피해 질수 있다. 우리가 이에 대응할 시간은 최대로 길어야 5년이라고 봐야 한다. 남은 5년 이전에 치킨게임이 불어 닥칠 여지도 크지만, 우리 기업들이 구사해야 할 것은 초(超)격차 기술력과 생산능력(수율)의 우위를 유지하며 지속적인 투자 확대를 하는 것이다. 앞서 벌어진 두 번의 치킨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도 이것이다.

반도체 산업 경쟁은 국가적 산업전략의 큰 그림에서 함께 움직인지 오래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정부 역시 직접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등 대놓고 보조금 성격의 프로젝트를 전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최소한 기업의 지속 투자를 위한 사회적 갈등 해소에는 적극 나서줘야 한다. 삼성과 SK 등 우리 기업이 송전탑 등 인프라 갈등으로 적기 투자를 할 수 없다면 이는 정부 책임이 크다. 미국과 중국이 언제든 가격담합 등으로 기술외적인 측면에서 몽니를 부릴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우리 기업의 우수 인력유출의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제2 치킨게임이 멀리 있지 않다. 남은 기간, 불확실성에 대비하면서 한국 반도체산업의 자강(自强)을 모색해야 할 때다.

서낙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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