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보안기업들, 과보호 단물에 빠졌다

이경탁 ICT과학부 블록체인팀장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DT현장] 보안기업들, 과보호 단물에 빠졌다
이경탁 ICT과학부 블록체인팀장
'2조원vs2000억원'. 국내 1위 게임사와 국내 1위 정보보안업체의 연 매출이다. ICT 산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게임은 국내 콘텐츠 시장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한국 콘텐츠 시장을 대표하고, 정보보안은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한 뿌리 기술과 다름 없다. 각각 중요성으로 따지자면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1위 기업 간의 매출은 1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일전에 만난 몇몇 보안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중소게임사였던 블루홀이 개발한 배틀그라운드가 세계적으로 대박을 내며, 프로젝트 초기부터 결정적으로 기여한 소수에게는 최대 50억원, 최소 10억원 이상의 인센티브가 지급될 것이란 뉴스를 보고 부러움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보안업계가 아니라 게임업계에서 첫 단추를 끼울걸 하는 자조 섞인 반응이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 유무다. 산업을 막론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대부분이 협소한 내수 시장을 벗어나 해외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지금의 위치에 섰다고 해도 무방하다.

반면 시장의 특수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내 보안 기업 대부분이 내수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해 규모를 키운 다음 해외 시장으로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국내 수백 여 개의 보안기업들이 내수 및 공공시장을 사이좋게(?) 나눠 먹으면서 안주하고 있다. 기자가 감히 한 회사를 이끄는 대표로서 수십, 수백 명의 임직원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고충과 무게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경영학에서 흔히 말하는 '기업가 정신'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고인물'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여력이 되는 몇몇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투자의 지속성 등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대표들이 고집과 자존심 하나로 험한 보안 바닥에서 버티며 회사를 이끌어 와서인지 기업 간 M&A(인수합병) 제의에도 쉽사리 응하지 않아 '규모의 경제'를 통한 덩치 키우기도 어렵다는 소리까지 듣고는 한다.

이에 일부 보안 관련 정책 당국자들은 국내 보안 산업의 경쟁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의 보안 시장 진출이 필수적이라고 외쳤지만, 대기업 입장에서 시장이 워낙 협소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진출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최근 SK텔레콤의 SK인포섹 인수라는 유의미한 소식이 들려왔다. SK인포섹은 보안관제와 컨설팅 등이 주 사업영역으로 국내 정보보안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2000억원대 연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다.

SK텔레콤의 이와 같은 결정은 국내 1위 이동통신사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지만, 영업익이 갈수록 줄고 KT, LG유플러스와의 출혈 경쟁이 앞으로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블록체인, VR(가상현실) 등 기업의 신성장동력에서도 이어질 가운데 보안이 이를 안전하게 구현하고 운영하기 위한 핵심 동력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SK텔레콤이 국내 물리보안 매출 2위인 ADT캡스를 인수한데 이어, SK인포섹까지 편입하며 '융합보안' 사업 확대에 본격 나서는 것은 시장에 가져올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통적인 보안 시장 또한 새롭게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SK텔링크를 통해 보유한 NSOK, 그리고 ADT캡스와 SK인포섹의 조직과 기술, 인력을 잘 조합한다면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SK텔레콤 사례보다 더욱 좋은 것은 오랫동안 국내 보안 시장을 이끌어온 중견, 중소 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폐쇄적인 국내 보안 생태계에 글로벌 보안 기업들이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공공 조달시장 문턱을 낮춰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 많은 국내 기업들이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지만,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이전과는 체질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 당시 일본문화를 개방한다고 했을 때 한국 문화산업은 모두 망하는 지름길이라 비판했다.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하면 한국 영화 산업도 망한다고 영화계에서 너나 할 거 없이 반대를 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면 치열한 경쟁으로 오히려 경쟁력을 높이고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만약 콘텐츠 시장의 적극적인 개방이 없었다면 일본 만화에서 모티브를 따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 '올드보이'부터 K팝 시장을 이끌고 있는 지금의 SM, YG, JYP, 빅히트 등의 기획사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보안 시장의 흐름이 변하는 지금이야말로 국내 보안업계가 한국경제의 대표주자로 나설 차례다.

이경탁 ICT과학부 블록체인팀장 kt87@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