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누리호에 지워진 짐

안경애 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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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누리호에 지워진 짐
안경애 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누리호 시험발사 장면을 생중계하지 않고 녹화방송하는 이유가 뭔가. 발사에 실패할 경우 정권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 내린 결정이란 괴담이 나돈다."

오는 25일 예정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시험로켓 비행 테스트가 국정감사장에서 도마에 올랐다. 누리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력개발 우주발사체로 약 2조원을 들여 개발해 오는 2021년 발사할 예정이다.

10일 열린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의 이 같은 지적에 다른 의원들도 한 마디씩 얹었다. 박대출 한국당 의원은 국감장에 맷돌을 가져와 문재인 정권의 국정운영이 어처구니(맷돌의 손잡이)가 없다고 질타하면서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도 생중계가 아닌 녹화방송을 하려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방위 위원장인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연구개발 과정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무책임한 말이다"라며 "공개할 수 있도록 하라"고 압박했다. 누리호 시험로켓 비행 테스트 준비에 한창인 과학기술자들은 갑자기 책임감 없이 국민 세금을 쓰는 집단으로 매도됐다. 국민 혈세를 써서 발사체를 개발하고도 테스트 실패에 대한 책임은 피하려고 꼼수를 부린다는 것.

이진규 과기정통부 1차관이 "누리호 본발사는 2021년 예정돼 있고 이번 시험발사는 연구개발 과정인데 생방송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답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김경진 의원은 "국민 혈세가 들어갔고 방송사들도 생중계를 원한다. 녹화중계 이유를 연구개발 과정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옹색하다"고 반박했다. 유영민 장관이 한발 물러서면서 이슈는 애매하게 정리됐다. 유 장관은 "괴담은 처음 들었다"면서 "방송사들이 생방송을 하겠다고 하면 막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의해 보겠다"며 생중계 여지를 남겼다.

누리호 생중계를 정권 지지율과 연결해 생각하는 정치권의 사고를 보면서 수년전 나로호 발사 당시가 생각났다. 당시 발사장면을 직접 보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요구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들은 발사 당일 그들에 대한 의전에 신경 써야 했다. 나로호는 실패와 연기를 수 차례 한 끝에 2013년 1월 30일 3차 발사에서야 성공했다. 첫 계획은 2005년 9월 발사였던 만큼 8년 이상의 시도 끝에야 가까스로 마지막 기회를 잡은 것이다.

굉음을 내면서 우주로 향하는 나로호를 보면서 성공을 확신했던 이들은 1, 2차 발사와 수차례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우주개발이 '실패의 역사'임을 확인했다. 나로호가 본발사 계획을 잡고도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다면 누리호는 아직 테스트 단계다. 누리호는 75톤 엔진 4기를 묶은 1단, 75톤 엔진 1기로 된 2단, 7톤 엔진 1기로 된 3단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75톤 엔진 1기로 시험발사체를 만들어서 이번에 테스트하는 것이다.

생중계가 되든 안 되든 국감장에서 이 이슈를 들고 나온 의원들은 시험 테스트 결과를 정치 이슈화할 것이란 우려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누리호 사업은 여러 정권을 걸쳐 추진돼온 국가 프로젝트이지 특정 정권의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 이번 테스트 말고도 거쳐야 할 관문이 한둘이 아니다. 발사체의 핵심인 1단 액체엔진을 러시아 기술에 의존했던 나로호와 달리 엔진부터 전체 시스템을 독자 개발하는 힘든 과정이 남아있다. 본발사가 3년 후 예정돼 있지만 2021년 발사도 장담하기 힘들다. 설사 발사에 성공하더라도 끝이 아니다. 누리호가 위성 발사에 본격적으로 쓰이려면 성능은 높이고 무게는 줄이는 후속연구가 필요하다. 정부는 누리호의 성능과 경제성을 높인 개량형 발사체와, 크기와 비용을 낮춘 저비용 발사체를 순차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누리호 신뢰도를 상업화 가능한 수준으로 높이고 기업에 기술이전해 국내 위성발사 수요를 소화하면서 관련 산업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세계 각국의 우주발사체 전략은 발사체 산업 육성과 발사비용 절감에 맞춰져 있다. 블루오리진, 스페이스X 등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어 국가 연구기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우주는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과 투자능력을 겨루는 우주탐사 시대를 넘어 새로운 산업의 장이 됐다. 아이디어와 실력으로 뭉친 벤처와 스타트업들이 인공위성과 우주발사체 분야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100% 우리 힘으로 개발하는 누리호에는 그 시대를 열어야 하는 짐이 지워져 있다. 이번 시험테스트는 첫 발을 내딛는 과정일 뿐이다. 그 의미와 긴 과정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지켜봐 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당분간 지원하되 세세한 간섭은 하지 않는, 정치권의 지혜로운 처신을 기대한다.

안경애 과학바이오팀장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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