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국가연구비 배분 `선택과 집중` 만능 아니다

[포럼] 국가연구비 배분 `선택과 집중` 만능 아니다
    입력: 2018-10-14 18:14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포럼] 국가연구비 배분 `선택과 집중` 만능 아니다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연구비도 이제 20조가 넘었다고 한다. 과거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아마 GDP 대비 연구비는 세계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툴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기술은 세계적인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고, 스타 교수는 연구비를 주체하지 못 할 지경이다. 뿌듯하지만 노벨상이 발표되는 가을이 되면 우리는 고개를 숙인다. 일본은 27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탄생시킨 기쁨과 일본의 과학기술에 대한 자부심에 환호하였고, 옆에서 바라보는 우리는 아쉬움에 고개 숙였다. 물론 노벨상이 국가의 기술 수준을 측정하는 단일 잣대는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이 아쉬움 마음에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연구풍토에 대하여 진단을 하였다. 노벨상 수상자 탄생을 위한 다양한 논의는 이미 지면을 장식하였으므로 필자가 사족을 붙일 필요는 없지만, 거창한 노벨상은 논외로 하고라도 평생을 학계에 있던 필자도 아쉬운 마음에 우리나라 연구 환경에 대하여 몇 마디 남기고자 한다.

우리는 연구비를 어디에 사용하여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철학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연구에는 공공적인 일에 사용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가 있고, 상업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가 있다. 예를 들면 개인이 하지 못하고 정부만이 하는 상·하수도 보급과 같은 공공사업에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공공영역을 위한 연구라면 휴대폰이나 인공지능 스피커와 같이 개인이 구입하는 보편적인 상용제품을 개발하는 연구는 상업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휴대폰은 성능이 우수하고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이 나오면 저절로 팔린다. 기업도 자금의 회수가 신속하고 용이하니,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다투어 연구를 하고 연구결과는 기업의 이윤으로 돌아온다. 공공기술들은 개발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아무리 우수한 기술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공공사업을 하지 않으면 사용할 데가 없다. 그러나 일단 사용이 되면 정부가 하는 공공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예산 즉 세금을 절약하는 기능이 있다. 상업연구를 하는 기업들은 대기업이 다수이어서 자체적인 연구역량이 있지만 환경기술과 같이 공공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영세하여 자체 연구개발 능력이 매우 취약하다. 정부의 세금으로 조성하는 국가연구비는 어디에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인가?

연구는 기초분야와 응용분야가 있다. 최근에는 연구비 총액은 크게 늘었지만 옛날보다 기초연구보다는 응용연구에 집중되고 있다. 연구비를 투자한 만큼 가시적 제품의 생산 결과를 요구하는 것이 잘 못된 것은 아니지만 가시적인 결과를 요구하는 세월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기초연구분야가 많이 위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제품이 해외 선진제품을 빨리 따라잡는 것이 목표였던 시절에는 응용연구가 더 필요했을지 몰라도 세계 일류제품보다 더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지금은 기초과학, 우리가 명명한 소위 원천기술의 역량이 없이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정부의 연구비는 기초과학 분야와 응용기술 개발에 대한 적절한 분배가 있어야 한다.

연구는 당연히 각 분야에서 꾸준히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비록 연구비가 작더라도 평생 한 우물을 팔 수 있도록 해 주어야 오랜 세월동안 쌓인 연구 성과가 빛을 보게 되어 노벨상 수상도 가능해 진다. 그런데 우리는 수 십 년 간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을 의심할 수 없는 정의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선택을 받은 분야는 연구비가 흘러 넘쳤고, 선택받지 못한 분야는 연구비가 가뭄에 콩나듯 했다. 연구자들은 국가가 지정한 10대 혹은 16대 분야를 ?아 다녔다. 최근에도 일부 분야에 연구비가 집중되다 보니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수 십 명이 넘는 대학원생을 두고 연구를 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연구자라 해도 유명해 질수록 연구실보다는 외부의 회의, 강연에 나서는 시간이 많아지니 수많은 학생들을 지도할 시간이 없을 뿐 만 아니라 눈부시게 발전하는 이론을 다 따라 갈 시간도 없을 듯하다.

선택과 집중은 연구비가 많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합리적인 원칙이었을지 모르나 국가 연구비 총액이 20조원을 넘어선 지금에서는 오히려 거두어야 할 원칙인 것이다. 어느 분야이든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는 분야란 없다. 그럼에도 정부의 연구비 조정하는 분들이 가끔 말한다. "그건 전에 연구한 것과 유사하네요" "아직도 더 연구해야 해요?" 만약 비행기가 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우주로 로켓을 발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휴대폰이 이동통신기로 충분하다고 했다면 스마트 폰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분야든 현재의 기술위에 진보된 기술을 쌓아가는 지속적이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비록 유사한 연구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정부의 연구비 배분은 상용연구보다는 공공연구에 우선권을 주어야 하고, 기초연구와 응용연구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하고, 어느 분야에서든 비록 적지만 한평생 꾸준히 한 우물을 팔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아량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노벨상도 그런 연구비 배분의 철학 위에서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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