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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데스크] `소주성` 그 달콤한 유혹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김광태 기자 ktkim@dt.co.kr | 입력: 2018-10-01 18:47
[2018년 10월 02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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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데스크] `소주성` 그 달콤한 유혹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김자홍. 그는 소방관이다. 돈을 벌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한다. 휴일 아르바이트는 기본이다. '투 잡' '쓰리 잡'이 일상이 되어버린 '워킹 푸어'의 현실을 대변한다.

그는 1300만 관객을 돌파한 '신과함께'에 등장하는 극중 인물이다. 영화는 별볼일 없고, 가족들도 모두 내상을 안은 채 뿔뿔이 흩어져 있으며, 마음속으로만 그리움과 죄의식과 연민을 품고 사는 젊은 세대들의 무의식적 풍경을 심드렁하게 표현해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 모았다.

참 버거운 세상이다. '성장'이라는 말은 긍정적 에너지의 대명사인데, 이 말이 묘하게 들리나보다. '성장'이란 말이 어느 순간부터 미덥지 않게 됐다. 시큰둥함을 넘어 은근한 반감마저 느끼는 젊은이가 많아졌다.

먼저 나를 소개할까 한다. 내 이름은 '소득주도성장'. 요즘 '소주성'으로 더많이 불린다. 고향은 미국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나의 탯줄이다. 나는 원래이름이 '임금주도성장'이었다. 물 건너 한국에 들어오면서 소득주도성장이 돼버렸다. 이름이 요즘 워낙 핫하다보니 '출산주도성장'이라는 유사상표도 나왔다.

하여튼 나를 알아주는 한국이 고맙기만 하다. 기억하자면 그때가 2015년이었을게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된 그때부터 당론이 됐다. 나의 지난 날은 제법 화려했다. 세계적으로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정부개입 최소화, 규제 완화, 자유무역,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와중에 나왔으니, 세간의 모든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나를 받아낸 이들은 포스트 케인지언들이었다. 그들은 시장을 믿지 않았다. 시장경제는 그저 가만히 놔두면 외부 충격이 아니라 시장참여자의 투기적 속성 때문에 주기적으로 공황을 맞는다고 봤다.

이를 막기 위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의 산파들은 이 신념의 신봉자들이었다. 그렇지만 낯부끄럽다. 나의 실체는 한 번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토하자면 나는 경제이론이라기보다 일종의 이념이나 사상에 가깝다. 그런데 한 물 간 퇴물이 이렇게 환대 받을 줄은 몰랐다. 좀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지난주 추석, 곳곳마다 아우성이었더구나. 8월 취업자수는 2690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000명 증가에 그쳤다. 올해 취업자 증가폭은 1월 33만4000명에서 2월 10만4000명으로 대폭 하락한 뒤 5개월 연속 10만명대 안팎에 머물렀다. 반면 실업자는 113만명. 환란 이후 최대라는 통계가 나왔다. 충격적이다. 고용쇼크에, 부동산 쇼크에 젊은층이나 중장년층이나 넌더리가 날 지경이란다. 민심이 지쳐간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소비를 늘리고 내수를 활성화해 선순환으로 경제 성장을 이룬다는 원대한 목적으로 내가 등판했다. 그러나 지금 논란만 거세지고 있다. 분배와 성장 모두 잡겠다고 했지만 온통 부작용만 속출하고 있으니 당국자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거다. 그들은 나의 존재 이유를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 두고 있다. 가계소득을 늘려 소비를 증대시키고, 내수 확대로 견실한 성장을 달성한다는 게 목표다.

그러나 순전한 착각이다.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는 상황을 더욱 꼬이게했다. 식당마다 밥값이 갑자기 1000원씩 올랐다. 최저임금 때문에 밥값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는 식당주인의 이야기가 비장하기까지 하다. 지난 1년간 소득주도 성장 실험이 저성장과 고용 참사로 이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결과 내 인기도 곤두박질쳤다.

정부는 "소득주도 정책의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걸린다"며 버티기 태세다. 걱정스럽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당국 내부의 집단 무의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소주성'에 대해 다시한번 제대로 살펴보길 바란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가정들이 현실에 맞는지 다시금 면밀히 따져보라. 일자리를 증가시키고 임금을 늘리는 것이 정부 개입으로 가능한 것인지 근원부터 뜯어보라. 이제야 고백하건대, 나 '소주성'의 진짜 이름은 '달콤한 유혹'이다.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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