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평양 동행 財界 총수들의 속앓이

[DT현장] 평양 동행 財界 총수들의 속앓이
박정일 기자   comja77@dt.co.kr |   입력: 2018-09-26 18:03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DT현장] 평양 동행 財界 총수들의 속앓이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많이 보려고 노력했다. (경협은) 아직 무엇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지난주 2박 3일 동안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 정상회담에 참석한 재계 총수들의 한결같은 답변이었다.사실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답은 이것 뿐이었다는 것이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경제협력을 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방북단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주요 재계 총수들이 포함됐을 때부터 소위 '들러리' 논란이 나온 이유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미래에 핵폐기를 포함한 본격적인 남북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재계 총수들도 여러 가지 경협 사업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핵폐기와 북한의 교역 정상화까지의 과정은 아직 안개 속이다.

사실 논란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 방북단의 명단이 나오기 전부터 있어왔다. 통상 정상회담 일행에 경제인들이 포함될 경우에는 대한상공회의소나 전국경제인연합, 한국무역협회 같은 경제단체들이 각 기업의 의견을 취합해 명단을 구성하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당국 발로 일부 매체에서 참석자 명단에 대해 보도하면서 드러났다. 경제단체들은 물론 각 기업에서도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자신들의 수장이 참석하는지 여부를 알지 못해 곤혹스러워했다.

여기에 북한 요청설까지 나오면서 '들러리' 논란은 더 커졌다. 한 북측 인사가 이재용 부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꼭 오시라고 말씀드렸다"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청와대가 '우리 정부의 결정'이라며 이를 공식 부인하면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비핵화 약속과 대화 노력의 저변에 '경제 살리기'라는 목적이 깔려있다는 것이 분명한 만큼, 북한이 정말 요청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앞둔 이재용 부회장을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도 방북단에 포함시킨 것 역시 북한의 요청 때문이라면 설득력이 있다.

들러리 논란에 대한 진위여부 판단은 뒤로 미루더라도, 사실 과연 재계 총수들이 아직 실효성을 예단할 수 없는 방북단 참여를 거부할 권한이 있기나 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배구조는 물론 최저임금, 일자리 확대 등으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고려하면 재계 총수들이 정부의 참여 요청을 거부할 배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이번 방북을 명분으로 정부가 대기업의 북한 투자를 촉구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기도, 거부하기도 어려운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본격적인 속앓이는 그때부터다. 경제적 득실의 문제보다 주요 매출 시장인 미국 등 우방국의 심기를 자극할 수 있는 부담을 떠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요 외신들은 정상회담 결과와 함께 이재용 부회장의 북한 내 활동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블룸버그는 이 부회장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임을 언급하면서 "이 부회장의 방북은 삼성이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석은 삼성의 이후 남북 경협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물론 평화 분위가 조성되면 대기업들이 통일 한국 경제 조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중국과 유럽 대륙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물류 허브를 선점하는 등 실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물론 북한 정권도 이를 보장할 수 없는 점을 고려하면, 소위 '묻지마 투자'는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에게도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책임은 오롯이 재계 총수들이 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은 나름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재계 총수들은 '남북 경협'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은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부담으로 반대 급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존재 목적은 지속 가능한 경영과 이윤 창출에 있다"며 "통일 한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치가 먼저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DT Main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