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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데스크] 다 타고 홀로 남은 운석의 절규

박선호 금융정책부장 

박선호 기자 shpark@dt.co.kr | 입력: 2018-09-18 18:06
[2018년 09월 19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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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데스크] 다 타고 홀로 남은 운석의 절규
박선호 금융정책부장
망한 나라의 국민은 슬퍼할 자격도 없다. 모두가 울지만, 정작 그 눈물을 닦아줄 이웃은 어디도 없다. 오직 망국의 국민들끼리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뿐이다. 사실 서로의 눈물이라도 닦아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망한 나라 국민은 자기 나라를 벗어나려 서로 살려고 서로 밀쳐낸다. 해안가에서 사체로 발견된 난민 어린이는 다른 누가 밀어낸 것이 아니다. 보트를 함께 탔던 이들이다. 보트가 전복돼 자기 먼저 살자고 밀쳐낸 것이다. 망한 나라의 국민 모습이다.

망한 나라의 국민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유럽 부국에는 평소 세계 인권에 관심을 보인 수많은 이들이 있지만, 정작 자국 해안에 도착한 난민의 손을 잡아 주는 이는 드물다. 과거 유럽의 아프리카 착취의 역사를 이야기해본들 귀 기울이는 이 없다.

최근엔 베네수엘라의 국민들이 돌팔매질을 당한다고 한다. 역시 나라가 망했기 때문이다. 본래 베네수엘라는 석유 부국이다. 그런데 국민의 환심만 사려했던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곳간을 비우고 빚까지 내 결국 망하고 말았다. 지금도 석유는 쏟아지고 있지만, 이제 베네수엘라 국민에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본래 경제 실정은 어느 폭정보다 무서운 법이다. 이웃 나라 주민들이 돌팔매를 하며 막고 있지만, 나라를 떠나는 베네수엘라 국민 행렬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우리 언론에 이 베네수엘라 할머니의 얼굴 사진이 소개됐다. 주름 가득한 얼굴엔 수심이, 눈가엔 눈물이 고인 듯했다. 망한 나라 국민의 눈물이다. 사실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눈물이다. 지난 1998년 우리도 외환위기로 국가 부도를 맞은 적이 있다. 그 때 눈물의 비디오라는 게 유행했다. 당시 제일은행의 한 지점 이야기를 담은 기록물이다. 비디오는 지점장의 출근 모습에서 시작한다. 새벽기도를 하고 세 자녀와 단란히 아침 식사를 한다.

하지만 이날이 이 지점장의 마지막 근무 날이었다. 당시 제일은행은 은행 순위 1위였다. 기업 대출이 제일 많았다. 기업이 부도나자 자연스레 제일은행도 위기를 맞은 것이다. 4000여 명의 직원들을 구조 조정했고, 경영권마저 외국은행에게 넘겨줘야 했다.

눈물의 비디오에는 한 여직원의 고백이 나온다. 울먹이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지난 10년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일했는데…." 불과 20년 전의 일인데, 이제 우리 사회 누구도 이 눈물의 비디오를 언급하는 사람이 없다. 벌써 잊은 것이다.

하지만 그 눈물의 불길한 징조는 자꾸 새로워지고 있다. 묘하게 20년 전 우리의 외환위기 앞서 그랬듯 최근 남미 국가들의 연쇄 부도 사태를 맞고 있다. 모두 좌파적 포퓰리즘 정책 탓인데, '소득주도성장'이던, '재정주도성장'이던 묘하게 우리 정부의 가는 길이 남미의 망국들과 닮아가고 있다. 그래도 우리 사회에 이를 지적하는 이가 드물다. 사실 관을 보기 전에 울지 않는 것이 인간인지 모른다.

지난 3일 국가 부도를 낸 아르헨티나에서는 새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동안 복지 정책에 길들여진 이들이 '퍼주지 않는' 나라에 분노한 것이다.하지만 눈물의 비디오를 기억하는 이는 안다. 어떤 총파업도 이미 빈 정부의 곳간을 채워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정부의 곳간은 IMF가 채웠고, 그들의 말이 법이 됐다. 파업은 망국을 부추길 뿐이다.

최근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처지에 빠진 브라질 국립박물관이 불에 소실됐다. 재정을 아끼기 위해 소방시설 관리를 부실하게 했던 것이 피해를 키웠다고 한다. 다른 복지를 줄이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그 덕에 국가 역사를 기록한 2000만여 점의 유물이 몽땅 소실됐다. 유일하게 남은 게 우주에서 떨어진 대형 운석이라고 한다. 이 지구 한 민족의 역사 기록이 말소된 현장의 목격자가 저 우주의 돌이라니 ….

홀로 남은 운석은 사라진 유물들을 대신해 절규하며 운다. 아직 사람들이 못보고 못 들을 뿐이다. "너희는 도대체 이 나라를 어쩌려는 것이냐?"

박선호 금융정책부장 s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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