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창조적 파괴`는 파괴되고 있다

[이규화 칼럼] `창조적 파괴`는 파괴되고 있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   입력: 2018-09-09 18:05
이규화 논설위원실장
[이규화 칼럼] `창조적 파괴`는 파괴되고 있다
이규화 논설위원실장
지난 1월 블룸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 국가로 한국이 5년째 1위에 랭크됐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2위 이하와 현격한 점수 차로 골드메달리스트가 됐다. 바통을 이어 7월에는 OECD가 한국을 혁신국가 1위로 6년 연속 올렸다. 대단한 일이다.

그럼에도 얼마 전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백 투 더 베이직'(기본으로 돌아가자)을 이야기했다. 세계 1위 챔피언벨트를 내려놓자는 말인가? 우리는 무언가 크게 탈이 났을 때 근본과 원리를 들여다보려 한다. 대체 그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건가.

잠깐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자. 최근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자 중국 3위 배터리업체가 자금난으로 6개월 동안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생산설비를 압류당하고 파산을 선언한 업체도 나왔다. 2위 업체는 상반기 영업이익이 70% 이상 감소했다. 보조금이라는 눈앞의 단물에 젖어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을 등한시 한 결과가 이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게 시장이란 링이다. 중국 배터리업체들이 정부 보호에 안존해왔다면, 스스로를 과신한 나머지 망한 대표 사례로는 1980년대 세계 2위 컴퓨터 회사였던 미국의 DEC가 꼽힌다. 이 회사 대표는 집에 컴퓨터를 갖고 있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DEC은 성능 좋은 사업용 컴퓨터 생산에 매달리다 1998년 문을 닫았다. 성공에 취해 미래를 잘못 예측한 결과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DEC은 사라졌지만 회사 대표 켄 올슨의 말이 옳았을 수도 있는 반전이 요즘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결론에서 얘기하겠다.

본론으로 돌아가, 왜 김 부의장은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했을까. 더 나가다가는 회복불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대부분의 핵심정책은 전 정부와 거꾸로 가기다. 효율과 효과는 그 다음 문제다. 전 정부는 적폐이므로 모두 쓸어버려야 한다는 확신에 차 있다.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승수(investment multiplier)의 함수다. 승수가 큰 분야를 골라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소득주도성장은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1~3분위 소득계층의 소득을 늘려 경제 선순환을 일으켜보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1500조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에 눌려 소비가 늘어나기 힘든 구조라는 점을 간과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 소득을 어디서 끌어댈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승수를 생각했다면, 기업 혁신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최근 5개월 연속 설비투자 증가율이 마이너스다. 외환위기 이후 최장 하락행진이다. 통계청이 전년과 전전년의 반도체산업 투자가 많았던 기저 영향이 작용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반도체산업은 보기보다 투자 연쇄효과가 의외로 높은 산업이다. 서스(스테인레스) 정밀가공 협력업체 대표들에게 들은 바도 이를 뒷받침한다. 삼성전자 고덕캠퍼스 투자가 마무리되면서 지난 6개월간 일감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최근 한 여당 중진의원은 법인세 소득공제혜택을 상위 10% 기업들이 독차지한다고 비난했다. 법인세의 63%를 0.1%의 기업이 내는데, 공제혜택이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아예 못 내는 기업에게 공제혜택을 더 줄 수는 없다. 이런 여당의 등쌀 때문인지 대기업의 R&D 투자에 대한 조세지출은 매년 줄고 있다. 경제에 대한 몰이해가 지배하는 한, 기업이 과감한 투자를 하길 바랄 순 없다. 생산요소를 재결합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기업가 정신, 즉 창조적 파괴는 더군다나 기대할 수 없다.

블룸버그와 OECD의 혁신지수에는 고등교육인구비율, 특정기업에 편중된 지적재산권 등록건수 등 한국적 특성이 포함돼 있어 그대로 믿었다간 큰코 다친다. 정부가 혁신을 북돋우는 데 관심이 없고 기업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나라에서는 보조금에 의존하다 위기에 처한 중국업체 신세가 될 수 있다.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예측불허한 미래를 위해 필요한 지는 앞서 언급한 DEC의 켄 올슨 말이 지금 맞아떨어지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올슨은 PC가 가정에 필요없다고 했는데, 클라우드컴퓨팅의 확산으로 정말 집에 컴퓨터가 필요 없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 순간에도 경쟁국의 어느 허름한 차고에서는 창조적 파괴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한데 우리는 스스로 혁신을 죽이는 길로 가고 있다. 한국경제의 '창조적 파괴'는 야금야금 파괴되고 있다.

이규화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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