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이념프레임에 갇힌 규제혁신

[DT현장] 이념프레임에 갇힌 규제혁신
김승룡 기자   srkim@dt.co.kr |   입력: 2018-09-06 18:04
김승룡 금융정책부 금융팀장
[DT현장] 이념프레임에 갇힌 규제혁신
김승룡 금융정책부 금융팀장

"재벌 기업 놈들 다 때려잡아야 돼." 입 거칠기로 소문난 전 민주당 의원이 입에 달고 살았다는 말이다.

"너 빨갱이냐?"한 보수 신문 출신 기업 임원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재벌 편들면 보수 적폐, 문재인 정부 편들면 빨갱이? 지금 우리 사회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단상이다.

이 같은 이분법적 이념 프레임이 우리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각계에 뿌리 깊게 퍼져 곪아가고 있다. 이분법적 분열이 우리 경제 진화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8월 임시국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업자본의 은행 보유 지분을 34%까지 허용하면 다시 또 재벌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야당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대한 은산분리 적용 예외를 특례법 본문이 아닌 시행령으로 규정하자고 하는데, 이는 재벌에게 길을 터주자는 것밖에 안 된다."(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당이 주장하는 ICT 기업에만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은 다른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다. 모든 기업에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대통령까지 나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을 외쳤지만, 결국 여야 이견은 물론 여당 내 일부 의원들 반대로 8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은 처리되지 못했다.

큰일이다. '경제민주화의 적폐냐 빨갱이냐'. 이념 논쟁이 아직도 이 땅에 70년이 넘도록 국론을 가르고 있으니 말이다. 당장 우리 경제는 언제 바닥으로 곤두박질칠지 모르는 '풍전등화' 상황이다. 실업률은 계속 오르고, 소득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진다. 출산율은 줄고 경제인구도 줄고 있다. 기업들은 이 땅에 투자하길 꺼리며 해외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미중 무역전쟁, 신흥국 경제위기 등 대외 경제여건은 계속 안개 속이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0.6%로 1% 아래로 떨어졌다. 올해 정부가 공언한 경제성장률 2.9%는 달성이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는 여전히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을 하고 있다고 자위하지만, 잠재성장률이 2.9%라는 건 실제 이보다는 더 성장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이미 우리 경제는 장기 저성장 구조로 접어든 지 몇 해다.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으로 만족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하반기 우리 경제는 더 나빠질 전망이다.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소득이 줄어드니 소비가 늘어날 리 없다. 소비가 늘지 않으니 내수는 매년 침체 상황을 반복한다. 수출이 잘 되고 있다고 하는데, 반도체 호황 덕이다. 반도체를 빼면 수출 증가율은 1%도 안되는 허수에 불과하다. 반도체는 반드시 시황 사이클을 탄다. 호황기가 오면 반드시 침체기가 온다. 이제 반도체 호황기는 끝물이다. 곧 반도체 가격도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러면 믿었던 수출마저 고꾸라질 것이다. 내수도 나쁘고, 수출도 나빠지고, 새로운 먹거리 산업은 없다면 정부가 그렇게 외치는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재정 투입해 공무원 더 늘려 일자리 만들 텐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보완할 수 있는 최선책은 혁신성장 정책이다. 혁신성장의 정의를 정부가 정확하게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혁신성장, 말 그대로의 의미를 풀어보면, 기존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땅 위에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의미다. 그래서 혁신성장 위한 규제 혁파가 필수다. 기득권을 인정하는 각종 규제를 없애지 않는 한 새로운 혁신 산업은 생기지도, 성장하지도 않는다.

혁신성장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원격의료 허용, 은산분리 완화 등 기존 규제를 개혁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조차 규제 개혁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만 해도 그렇다. 기업들 수시로 때리고, 벌주고, 으름장 놓는 상황이다. 또 재벌 지배구조 개선하라며 비금융그룹과 금융그룹을 나누고, 상호출자 고리를 끊을 것이며, 금융지주를 만들든지 산업과 금융 자본을 분리하라고 수시로 압박하는 정부다. 이런 때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니. 간 큰 재벌이라고 해도 어디 무서워서 인터넷은행을 사금고로 만들 수나 있겠나. 군사정부 시절, 정경유착이 만연하던 시절이나 가능한 얘기다. 과거 이념 논쟁 프레임에 갇혀 당장 위기가 코 앞에 닥쳤는데도, 규제 혁신과 신산업 육성은 뒷전이다. 성장하지 못하면 뒤처질 뿐이다. 성장하지 못하면 일자리도, 소득도, 정권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

김승룡 금융정책부 금융팀장 srkim@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DT Main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