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포럼] 취업할 의무를 강조하는 고용대책](http://contents.dt.co.kr/images/201809/2018090502102369640001[1].jpg "[포럼] 취업할 의무를 강조하는 고용대책")
세계경제가 회복되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8월 수출 동향에서 1~8월 누적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6% 증가한 3998억달러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지 않는다. 이는 수출구조에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수출 주력 품목을 보면 자본집약적인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등에서는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반면 고용창출 능력이 높은 조립 라인 생산 및 부품 공급 회사가 많은 자동차의 경우는 수출이 불과 0.5% 증가했다. 무선통시기기, 가전 및 선박은 오히려 수출이 각각 15.5%, 25.2%, 71.8%나 크게 감소했다. 이 품목들의 수출 감소는 주로 경쟁 심화 또는 해외생산 확대 탓이다.
이처럼 수출의 최대실적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답답한 상황에서 고령화, 초저출산, 빨라지는 연금고갈 전망 등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또 다른 중대한 복병들이다. 이런 때에 어떤 한두 개의 정부정책을 놓고 온 나라가 찬반에 휩쓸리기보다 거시적 관점에서의 문제 접근이 절실해 보인다.
독일도 통일 이후 평균 성장률과 실업률이 1996~1999년 각각 1.59%, 9.13%로 심각한 불황을 겪었다. 2003~2006년 기간에는 평균 경제성장률과 실업율이 각각 1.62%, 9.93%로 최악의 경제상황이 전개됐다. 당시 독일경제가 위기임을 인지한 독일 중앙은행은 독일경제 회생 정책으로서 2000년에 'Agenda 2010'을 작성했고, 이는 정치권과 경제계에 회람됐다. 이 보고서는 거시적 관점에서 경제주체의 사전적 경제행위를 가정해 경제를 연구 분석 예측하게 되므로, 여야 관계 없이 독일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정치인들이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공통의 가늠자가 됐다.
당시 독일 총리 슈뢰더는 비록 자신이 근로자를 정치기반으로 하는 사민당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노사정 틀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자 2002년 독일 경제 회복을 위해, 경영측 다수와 노동측 소수, 그리고 전문가와 정치인 총 15명으로 노동개혁위원회, 즉 페터 하르츠가 위원장을 맡는 '하르츠위원회'를 구성해 강도 높은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이어 2003년에는 Agenda 2010을 발표해 노동시장, 사회복지제도, 경제활성화, 재정, 교육 및 훈련 등 5개 분야에서 구조개혁에 착수했다.
신뢰할 거시지표에 기반을 두고 전방위적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한 덕택에 독일은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저성장의 불황에 빠져들었음에도 오히려 유럽의 병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유럽의 강자 자리를 회복했다. 2017년 독일의 경제성장율은 1.61%이지만 실업율은 4.161%로 하락했다.
하르츠 전 위원장은 2015년 한국 강연회에서 독일의 개혁은 '실업자 줄이기'라는 명확한 목표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이를테면 한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는데 거절한다면 왜 거절하는지 사유를 적도록 하고, 그에 따른 처벌까지 가능하도록 했다"며 "실업자는 직업을 찾을 권리뿐 아니라 빨리 실업을 벗어날 의무도 있으며, 그 의무태만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실업을 줄이기 위한 이러한 강력한 정책은 정치권, 사법부 등 모든 부서의 일관된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물론 개혁의 성과는 2~3년 이내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지속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이루어 가려면 독일의 경우처럼 정확한 거시적 지표에 의거한 범국민적 합의, 그리고 '실업을 줄이기 위해 직업선택의 자유도 제한'할 정도의 강력한 '한국판 Agenda 2030'개혁을 만들어 거시적 관점에서 노동, 복지, 재정, 교육 등 전분야의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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