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칼럼] `재정주도성장`에 미래는 없다

[예진수 칼럼] `재정주도성장`에 미래는 없다
예진수 기자   jinye@dt.co.kr |   입력: 2018-09-02 18:14
예진수 선임기자
[예진수 칼럼] `재정주도성장`에 미래는 없다
예진수 선임기자
'불행 예금'이라는 말이 있다. 나중에 곤경에 처할 때를 대비해 돈을 쌓아놓는 것이 불행예금이다. 한국도 재정 불량의 시대를 대비해 '불행 예산'을 적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자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비가 내리면 '비 해피'라고 한다. '돈 워리, 비 해피'(Don't worry, Be happy)라는 뜻을 담고 있다. 비가 내려 댐 저수율이 늘어나면 "돈이 쌓인다"고 한다. 최악 가뭄이 닥칠 때 쓸 물 공급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올바른 정부라면 중·장기 비전과 당면 과제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한국은 빠르게 늙어가는 중이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14%를 넘어 한국도 마침내 '고령 사회'에 진입한 사실이 지난달 27일 정부 공식 통계에서 확인됐다. 2026년으로 예상되는 초고령 사회 진입시기도 1년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도 2057년으로 5년 전 재정 계산 때보다 3년 앞당겨졌다.

정부는 내년에 복지 지출을 늘리고 경기에 직접적 자극을 주기 위해 470조5000억원의 '울트라 슈퍼 예산'을 편성했다. 증가율은 두자릿 수의 턱밑인 9.7%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했던 2009년(10.6%) 이후 가장 높은 것이라고 한다. 당장은 괜찮다지만 고령사회로 각종 연금 수혜 기간과 대상자 수가 늘어나면 갈수록 재정 압박이 현실화될 것이다. 얼마전 만난 지인은 "예산이 크게 늘어난다는 뉴스에 겁부터 난다. 유리지갑 월급쟁이들의 세금 부담 증가율이 기업 세금 증가율의 140배라는데, 이번에는 내 세금을 얼마나 많이 걷어갈까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파악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세금 등 국민부담률은 26.9%로 역대 최고치였던 2016년보다 0.6%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의 활력이 저하되고 있는 이유도 공무원 증가 등으로 공공부문이 인재와 돈을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퍼붓는 공공 일자리 늘리기는 뚜렷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성장 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는 고급 인재 확보는 지연되며, 높은 국민부담률로 민간 소비는 줄고, 복지 비용의 상당 부분은 공무원 연금 등으로 새나가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 겉돌면서 세금주도 성장이 이어질 경우 다음 정부가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 내년 슈퍼예산에 대해 야당은 "소득 주도 성장의 실패를 국민 세금으로 메우려는 후안무치 예산"이라고 폄하했다. 공무원 증원,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최저임금 인상분 지원 등 재정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 국가 채무는 지금보다 400조원이상 증가할 것으로 국가예산정책처는 내다봤다. 한 공무원은 "현장에 대한 정보 부족과 정책 미스 때문에 광범위한 예산 낭비가 빚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1년 전인 지난해 9월 연구보고서를 통해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고용 악화, 소득 양극화 심화, 투자 부진을 불러올 것으로 예측했던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의 교수의 생각도 경제정책이 설계한 방향대로 쭉 뻗는 탄탄대로를 질주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논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이 경기부양과 성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과 불완전성이 존재하며, 그 인과관계가 학계에서 실증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함."

현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추진한 정책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순전한 우연이다. 2년 연속 이어진 슈퍼 예산이 잘 못 쓰이면 후유증은 더 클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올해뿐 아니라 내년에도 세수여건이 좋다고 하지만 반도체 경기 하락 가능성 등으로 경기상황이 유동적이어서 장담하기 어렵다. 생산연령 인구가 줄면서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구조적이고 장기적 하향 추세에 있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더 늦기 전에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책 당국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밤샘 토론이라도 해야 한다.

예진수 선임기자 jin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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