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원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 연구소장
![[기고] 한국 전통과학은 세계적 수준이었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808/2018081402102369640001[1].jpg "[기고] 한국 전통과학은 세계적 수준이었다")
영국이 자랑하는 과학관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과학문명사의 맥락을 이해하도록 설계되었다. 중국 베이징의 중국과학기술관에도 명칭 자체에 중국이라는 국적이 담겨 있다. 2016년 전통과학 전시관을 확 바꿨는데, 중국 고대의 기술혁신, 중국 고대과학을 활용한 과학탐구, 중국과 세계문명의 교류를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우리는 한동안 이런 세계적 추세에 비켜나 있었는데, 이제야 방향을 나란히 하게 되었다.
한 때 불행한 식민시기를 거치며 한국에서는 전통과학에 대해 세계 최초니, 신토불이니 하면서 민족주의적 감정에 의존하는 역사가 있었다. 이런 데 질겁한 사람들은 '한국과학문명'이란 말을 듣는 순간 또 오래된 레코드를 튼다고 냉소할지 모르겠다. 세계를 대표하는 한국문명의 업적으로 인쇄술만 알려져 있지만, 최근 더 많은 신뢰할 만한 연구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아직까지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통르네상스지원단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중견 연구자 다수가 참여한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의 한국과학문명사 총서 작업(국문판 30권, 영문판 7권)도 이런 흐름과 나란히 한다. 우리는 과학문명총서를 준비하며 여러 문헌 자료들과 외국의 평가를 다시 정리할 기회를 얻었고, 그런 여러 기록들을 살피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과학문명의 모습이 오히려 그동안 우리 전통과학에 대한 일종의 자기비하에 가려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없는 것을 부각해 대단한 것처럼 포장한다면 큰 문제다. 거꾸로, 있었던 것을 무지의 소치로 깎아내린다면 그 또한 병폐다.
동의보감으로 대표되는 한국 한의학이 중국 한의학 전체 수준과 나란히 한다면 믿겠는가. 15세기 세종 때 문명의 핵심인 역법을 제정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것은 중국 인도 이슬람 문명권의 성취를 이은 것이며, 서유럽에서는 그레고리역의 등장까지 140년을 더 기다려야했다. 문명의 젖줄인 지식의 보관과 확산을 위해 일찍부터 인쇄술을 창의적으로 개발해 1천여 년 이상 지속해온 문명이 있다면 놀라운 세계사적 현상이 아닌가. 자주국방 무기 제작 기술을 첨단화하는 엄청난 노력이 없었다면, 그 오랜 기간 센 나라 옆에서 과연 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런 것들을 과학문명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이 과학문명이겠는가.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과학기술이 한국문명 발달의 원동력이었다.
한국과학문명사 총서의 영문판을 펴내기로 한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에서는 일찌감치 총서명을 '한국의 과학과 문명'으로 정했다.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중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와 격을 맞추고자 한 것이다. 한국 현대과학이 일군 성취도 놀랍지만, 막강한 중국문명 곁에서 늘 드높은 과학문명을 유지한 비밀을 세계 사람이 궁금해 한다고 했다. 서구인들조차 인정하는데 우리만 가치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과학문명이 있었다. 과학자가 있었다. 창조적인 과학 유전자가 있었다. 우리는 한국과학문명에 대한 긍지를 가진 과학자를 양성해내야 한다. 그들이 불확실한 세계를 맞이한 한국과학문명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단장할 전시관에서 과학 꿈나무들이 한국과학문명의 오래된 미래를 배우고, 즐기고, 체험하면서 자신들이 도도한 한국과학 문명사의 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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