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데스크]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

[DT데스크]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
이근형 기자   rilla@dt.co.kr |   입력: 2018-08-05 18:00
이근형 정치국제부장
[DT데스크]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
이근형 정치국제부장

찌는 무더위에 혼이 나갈 지경이다. 수은주가 체온보다 높은 39도, 40도를 찍으니 불가마 속에 사는 기분이다. 8월 첫날부터 기상관측을 시작한 지 111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니 힘겹다. 걸친 옷을 모두 훌러덩 벗고 싶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현행법 위반이다. 공연음란죄에 해당해 처벌받는다. 더위가 앞으로 열흘을 더 간다니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와 달리 맨몸으로 거리를 활보했어도 처벌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임금님은 거짓말쟁이 재봉사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멋지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 옷이다. 옷이 완성됐다는데 보이지 않았다.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에 모두 입을 닫았다. 임금은 이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다. 한 소년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외쳤다. 권력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모습을 꼬집은 우화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 따르면 지난 5년간 20개국 이상의 정상이 부패로 권좌에서 쫓겨났다. 전 세계 국가 중 10%가 넘는다. 거짓말쟁이 재봉사를 곁에 둔 임금님이 생각보다 많았다. 옆에는 권력 앞에 입을 닫은 관료들이 있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불과 지난해 현직 대통령을 탄핵한 곳이 대한민국이다. 전 대통령의 곁에도 재봉사가 있었다.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 모두 입을 닫았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한 '충직한' 신하는 밀려났다. 한국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동화보다 비참한 결론을 맞았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지났다. 새 대통령이 자리를 대신했다. 학습효과인지 반환점을 앞둔 성적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불안하다. 누가 돼도 다음 대통령은 지뢰밭 위를 걷게 될 것이라는 몇 년 전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노래 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지" 안타깝다.

문제는 경제에 있다. 지표가 너무 좋지 않다. 6월 산업생산지수가 3개월 만에 감소로 돌아섰다. 제조업 가동률도 70% 선이 위협받고 있다. 설비투자도 2000년 이후 처음으로 4개월 연속 뒷걸음질쳤다. 기업들의 체감 경기도 작년 2월 이후 최악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나타나던 신호다. 월 30만이 넘던 신규 취업자는 10만 밑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으로 영세상인들은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 급기야 한국은행이 올해 3%로 잡은 성장률 목표를 2.9%로 낮췄다. 이마저 달성하기가 여의치않다.

우리만 그렇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미국은 고공행진이다. 지난 2분기 GDP(국내총생산) 4.1%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9%를 호언 한다. 실업률도 18년 만에 최저인 4.0%다. 일본이나 EU(유럽연합)도 각각 26년과 10년 만에 최저 실업률이다. 미국 취업 시장에는 학력 파괴 바람이 불고, 일본과 EU는 취업 이민의 문호를 넓혔다. 일자리 풍년이니 근로자 급여도 상승세다.

차이는 '클래스'가 달라서다. 미국과 일본은 규제 완화로 기업에 활기를 불어넣어 꼬꾸라지던 경제를 살렸다. 반대로 한국은 근로자의 임금을 먼저 높이는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폈다. 그것이 지금의 차이다. 성장 없는 소득 증가는 같은 파이를 나눠 먹자는 얘기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소득분배'가 되고 말았다. 정부도 인정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솔직하게 소득분배로 경제정책을 바꿔 심판을 받는 게 낫다.

마침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끝내고 복귀했다. 개각도 예고돼 있다. 문재인 정부 2기의 출발이다. 늦기 전에 보이지 않는 옷은 버려야 한다. 거짓말쟁이 재봉사도 그만 내칠 때가 됐다. 소년을 더 늘려야 한다. 땀에 젖은 옷은 갈아입어야 한다. 계속 입으면 몸에서 악취가 난다. 지난달 대통령 스스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2기의 출발은 경제 정책 변화와 인적 쇄신이면 어떨까 싶다.

이근형 정치국제부장 r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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