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DT현장] `반도체 고점 논란`의 오해와 진실](http://contents.dt.co.kr/images/201808/2018080102102269781001[1].jpg "[DT현장] `반도체 고점 논란`의 오해와 진실")
잊을만하면 다시 등장하는 '반도체 고점 논란'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업 가치를 흔들고 있다. 사상 최대 실적 행진에도 주가는 내려가고 있으니 억울할 만도 하다. 최근 만난 한 택시 기사는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해 SK하이닉스에 투자했는데, 고점 논란 기사만 나오면 주가가 뚝뚝 내려간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올해를 정점으로 조정기에 진입할 것이라는 분석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대표적인 메모리반도체 제품인 D램 시장 규모는 올해 1039억9600만 달러(약 116조원)로 정점을 찍은 뒤 2022년에는 949억1600만 달러로 소폭 하락할 전망이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조정기에 진입하더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급락을 걱정하는 것은 한마디로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우선 바로 직전 해인 2017년 D램 시장 규모는 올해 전망치보다 약 20% 작은 735억2100만 달러(약 82조원)였는데,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의 영업이익은 35조2000억원에 이르렀고, SK하이닉스 역시 13조7000억원로 사상 최대였다. 영업이익률은 두 회사 모두 40%를 넘겼다. 조정기라 하더라도 작년보단 2022년의 시장이 더 크다.
또 보통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이 10%를 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실적을 '부진'했다고 보긴 어렵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세계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은 하위권 업체들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내년부터 메모리반도체를 본격 양산하면서 공급과잉이 발생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당장은 중·저가 시장만 영향권에 들어간다. 그러나 시장의 평가는 냉혹했다. 실제로 지난달 23일 한 증권사의 반도체 고점 논란 관련 보고서가 나온 뒤 코스피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보다 7.05% 하락한 8만1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도 2.00% 내린 4만6500원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주가는 도무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반도체 고점 논란의 저변에는 두 기업의 실적에 대한 우려보다 반도체 수출 의존도에 대한 불안감이 담겨있다. 올해 상반기 반도체의 수출 규모는 전체 수출의 20%에 이르렀으며, 반도체 무역 수지 흑자는 408억 달러로 전체 무역수지 흑자(325억 달러)보다 크다. 반도체의 성장세는 고점 논란과 관계없이 이미 거의 한계에 달했다. 반도체 수출 상승세는 가격 상승 때문이지 물량이 늘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비트그로스(용량 기준 생산량 증가) 예상치는 20% 수준이지만, 올해 상반기 메모리반도체의 수출은 54.2% 증가했다. 이는 가격 상승이 수출 증가에 더 영향을 줬다는 것을 증명한다. 세계에서 우리 메모리반도체를 보는 질투의 시선은 뜨겁다. 1980년대 초반까지 반도체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30년이 지난 지금 세계 1위 메모리반도체 국가로 자리를 굳힌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메모리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에 1위를 뺏긴 인텔이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최근 외국계 증권·투자 업체들의 반도체 고점 관련 보고서를 '주가 흔들기'로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산업계에서는 메모리반도체의 고점을 걱정하기보단 반도체에 이은 다른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사상 최대의 실적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CEO(최고경영자)들은 언제나 위기라며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며 "사실 반도체 고점 논란이 우려하는 대상은 삼성전자 등이 아니라 우리 수출의 위기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늦게나마 깨닫고 최근 시스템반도체 등 다음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다만 정부는 과감하고 빠른 혁신을 위해 규제의 문턱을 낮추고, 연구·개발(R&D)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는 등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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