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이버안보는 중견국 외교의 시험대다

김상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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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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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사이버안보는 중견국 외교의 시험대다
김상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최근 중견국 외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여태까지 중견국 외교는 주로 무역금융, 기후변화, 개발원조, 정보통신 분야 글로벌 외교의 장에서, 서방과 비서방 진영 또는 선진국과 개도국 그룹 사이에서 한국이 담당할 역할로 인식됐다.

이에 비해 미·중·일·러가 각축하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에서 한국의 중견국 외교를 논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이른바 '동북아균형자론'과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안에 담긴 중견국 외교의 발상은 국내외의 냉소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미·중 두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과 같은 '약소국'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한반도 비핵화를 의제로 진행된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중견국 외교에 대한 통념이 변하고 있다. 미·북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이나 '중재(仲裁)외교' 등을 내세워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한 때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의 외교적 처지를 '코리아 패싱'이니 "조수석에도 못 앉을 처지"라며 비아냥거리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글로벌 외교의 장에서만 중견국 외교를 한정하려 했던 예전의 분위기에 비하면 그 논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중견국 외교의 대표 분야가 사이버 안보다. 2010년대 들어 사이버 공격은 동북아의 지정학적 이슈와 연계되기 시작했다. 북한이 배후로 추정되는 해커 그룹들이 국가 기반시설을 공격하는 일이 늘어났고, 미국의 소니 영화사에 대한 북한의 해킹 공격은 북미관계에 큰 불씨를 던질 뻔 했다. 사이버 안보는 글로벌 패권을 놓고 각축하는 미·중 사이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사이버 안보가 올라오는가 하면, 이른바 '중국해커위협론'과 '스노든 폭로 사건'을 둘러싸고 양국 간에는 날선 공방이 오고갔다. 최근 사이버 안보는 통상마찰, 데이터 주권, 가짜뉴스 논란 등과 연계되며, 양국의 기술력과 정책·제도 전반을 아우르는 '사이버 국력 경쟁'으로 비화되는 모습이다.

글로벌 외교의 관점에서도 사이버 안보는 중요한 쟁점이다. 사이버 안보의 기술적 특성상 일국 차원의 대응만으로 해커들의 '보이지 않는' 공격을 막아 낼 수는 없다. 사이버 공격의 진원지를 찾아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주변국들과의 협력이 중요하고, 일탈적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국제규범을 만들 필요도 있다.

국제법을 원용하려는 시도는 사이버전 교전수칙인 '탈린매뉴얼'을 탄생시켰고, 유엔 정부전문가그룹(GGE)에서도 오랫동안 이 문제를 논의했다. G20, OECD, 상하이협력기구 등 정부간협의체나 ICANN이나 ITU와 같은 인터넷 거버넌스의 장에서도 사이버 안보의 국제규범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과 서유럽 등 서방 진영과 러시아와 중국 등 비서방 진영은 사사건건 대립 중이다.

이렇듯 사이버 안보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갈등과 글로벌 외교의 난제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국이 미·북와 미·중 사이에, 또는 서방과 비서방 진영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있다는 사실이다. 사이버 안보 문제는, 최근 국가적으로 논란이 일었던 사드(THAAD) 문제만큼이나, 한미동맹과 한중협력 사이에서 딜레마를 야기할 불씨를 안고 있다.

사이버 안보의 글로벌 쟁점과 관련하여, 민간 주도의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을 옹호하는 서방 진영과 사이버 공간에서도 국가주권을 강조하는 비서방 진영의 사이에서, 한국이 외교적 입장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존의 발상으로만 이 분야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중견국 외교를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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