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IT를 제대로 활용 못하는 IT 강국

최양수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 입력: 2018-07-18 18:00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시론] IT를 제대로 활용 못하는 IT 강국
최양수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월드컵축구에 전세계인이 열광하고 있다. 세계 1위 독일을 꺾어 기적을 이룬 대표팀에 우리도 열광했다. 축구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승패를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다. 예를 들어 선수의 평균 신장이나 체력이 경기의 결과에 결정적인 예측 요인이 아니다. 객관적인 조건에 열세인 한국이 그것도 2:0으로 기적과 같이 완승함으로써 우리는 열광한 것이다.

한때, 그리고 여전히 'IT 강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은 IT에 관한 한 축구의 독일 수준이라 할 수 있다. 3년 전 미국 소비자가전쇼(CES)에서 미국 케이블 TV 대표가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미국 초고속통신망 사업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케이블 TV 대표는 "한국이 초고속 통신망 포설률과 속도에서 세계 1위지만 미국의 경우 대도시만을 본다면 미국이 한국을 능가할 수 있다"는 발언이다. 자신들의 경쟁력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지만 역으로 한국을 그들의 선망 내지는 질시의 대상으로 여긴다고 보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근년에 이런 한국의 지위가 여러모로 위협받고 있다. 네트워크와 하드웨어에서의 경쟁력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욱이 소프트웨어에서의 경쟁력은 세계적인 선도기업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정도가 더욱 커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와 같은 선도 기업들의 UI, UX를 경험한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우리 기업과 그들과의 격차를 실감할 것이다. 조 예선 최하위로 탈락한 독일의 모습이 우리의 소프트웨어 현주소에 오버랩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현재 연구년을 맞아 미국의 뉴욕 외곽에 생활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이러한 격차를 일상에서 더욱 체감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소비재 유통 프랜차이즈들은 개인이 회원 가입을 하면 이메일이나 앱의 푸시 메시지로 고객에 대한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나의 과거 소비행태에 기반한 상품소개와 세일 정보를 맞춤형으로 보내온다. 무엇보다도 메시지의 빈도나 내용이 성가시지 않은(unobtrusive) 수준을 유지한다. UI, UX가 매끈하게 제시되기에 광고라는 인상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생활 정보로 여겨지고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진다.

내가 경험한 가장 큰 차이는 주거래 은행과의 거래다. 앱 기반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몇 가지 열거해 보자. 우선 미국 은행 앱은 구동시간이 짧다. 로그인은 2년 전부터 지문인식으로 간편하게 이루어진다. 나의 한국 주거래 은행도 지난봄부터 지문인식 로그인을 제공하지만 구동시간과 반응이 뚜렷하게 더 느리다. 물론 공인인증서 창을 띄우고 로그인하던 시절보다는 간편하다. 미국 은행의 초기 화면엔 내 계좌정보와 신용카드 정보, 그리고 네 개의 메뉴가 하단에 제시된다. 화면의 크기에 맞추어 기능의 주요도에 따라 직관적으로 모든 정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은행 초기 화면은 내용이 화면에 맞춰져 있지 않아 스크롤을 해야 다른 정보를 볼 수 있다. 신용카드는 별도의 앱으로 구동된다. 메뉴로 들어가면 19개의 기능이 주요도나 사용빈도와 무관하게 나열돼있다. 미국 은행에서의 계좌 이체는 수신자 개인의 전화번호 또는 이메일과 이름만 입력하면 된다. 수신자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본인임을 인증하면 자신의 거래 은행에 입금된다. 타인에게 받은 수표를 입금하는 경우 수표를 스캔해 앱에 올리면 된다. 최근 인공지능 기능을 탑재해 음성으로 공과금 지불이나 계좌이체를 이동 중에도 손쉽게 처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소액을 이체하더라도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번호를 몇 차례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가장 보수적일 수 있는 미국의 대형 은행이 신기술을 도입해 지속적으로 혁신을 이뤄가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국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은 노동자가 열심히 일을 안 해서가 아니라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가 혁신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닐까? 'IT를 제대로 활용 못하는 IT강국'이 우리의 현주소가 아닐까? 이러한 의문이 조 예선 탈락한 독일의 모습이 한국에 투영되는 이유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