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658) 발사르탄과 의약안전 행정의 미숙성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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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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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58) 발사르탄과 의약안전 행정의 미숙성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고혈압 치료제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식약처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750만 명의 고혈압 환자들이 불안에 떨면서 주말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제조·판매를 중지시켰던 219개 품목 중 47 퍼센트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황당한 소식이 전해졌다. 82개 제약회사 중 46개사가 날벼락을 맞았던 셈이다. 식약처가 나머지 제품에서 발암물질을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고, 위해성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이 7월 5일 중국산 '발사르탄'(Valsartan)을 원료로 사용한 고혈압 치료제를 회수 조처한 것은 사실이다. 캐나다와 홍콩도 회수 조처를 했다. 유럽의 소비자들은 '다음 처방을 받을 때 대체 약품을 처방받게 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우리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EMA의 조처는 중국 제지앙화하이제약공사(浙江華海製藥公司)의 자발적 통보에 따른 것이었다. 제조 공정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N-나이트로소다이메틸아민(NDMA)으로 오염된 발사르탄이 생산돼 2300 배 치가 유럽 21개국과 캐나다로 수출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우리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일주일 이상의 검토를 거쳐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5개 제품에게만 선별적으로 자발적 회수 조처를 취했다. 대만 식약처의 대응도 차분했다. 오염된 물량이 대만으로 수입됐는지를 확인한 후에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는 것이다. 홍콩은 오염이 확인된 5개 제품을 회수 조처했다. 소동이나 혼란은 없었다.

우리 식약처도 중국산 발사르탄을 사용하는 제약사들에게 중국 제조사로부터 통보를 받았는지부터 확인했어야만 했다.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뒤늦게 우리 제약사들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의약품 제조·판매 허가를 받으려면 원료의약품신고제도(DMF)에 따라 원료의약품의 제조·품질관리·포장 등에 대한 자료를 식약처에 제출해야 한다. 식약처가 토요일 오전에 82개 업체가 생산한 치료제에 대해 판매중지 조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제도 덕분이었다. 그런데 식약처는 46개 업체가 이미 중국산 발사르탄의 사용을 중단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식약처의 DMF 자료가 엉터리였다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주무관청이 관리를 소홀히 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언론 보도도 어설펐다. NDMA는 인체 발암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서 '2A군'으로 분류하는 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물질 분류는 발암성의 강도에 따른 분류가 아니다. 적색육·숯불·뜨거운 차와 국물도 2A군으로 분류된다. 인체 발암성이 분명하게 확인된 술 담배 젓갈 직화구이를 더 걱정해야 한다. 발암성에 대한 무분별한 공포를 조성하는 관행은 버려야 한다.

사실 NDMA는 식품을 가공·조리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물질이다. 수돗물의 염소 소독이나 음이온 교환수지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NDMA는 발암성이 아니라 간 독성이 더 걱정되는 물질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NDMA의 위해성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식약처가 NDMA를 분석할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보도도 정확한 것이 아니다. NDMA의 분석은 화학적으로 어렵지 않다. 다만 아직 국제적으로 공인된 분석법이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NDMA에 의한 피해 사실이 확인된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식약처의 의욕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문성과 행정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의욕은 소비자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살충제 달걀과 생리대 파동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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