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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기업 기술투자 의지 꺾는 일자리 정책

안경애 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입력: 2018-07-11 18:00
[2018년 07월 12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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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기업 기술투자 의지 꺾는 일자리 정책
안경애 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상반기에 사업을 40개 수주했는데 다 합해야 10억원이에요. 규모 있는 사업이 안 나오니 강바닥에서 사금 캐듯 작은 일을 긁어모아 버티고 있습니다."

경기 용인에 본사를 둔 교통IT 분야 중소기업 A사 대표의 말이다. 업력이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가뭄에 내일을 걱정하는 처지다. 이 회사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번 영업이익의 절반을 스마트톨링 솔루션 개발에 투자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도로공사가 스마트톨링 사업을 전면 보류하면서 이 회사가 개발한 기술은 공급할 시장이 사라졌다. 회사 대표는 "그동안의 투자가 물거품이 됐다"며 앞으로 미래투자는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허탈해 했다.

교통IT 분야 중견기업 B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회사는 8년 전부터 스마트톨링 기술을 개발해 왔다. 유료도로 요금징수시스템이 종이통행권, 하이패스를 거쳐 결국 영상인식 방식으로 바뀔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업이 중단되면서 이 회사도 8년간의 투자를 회수할 길이 없어졌다.

이 회사 직원들은 지난 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 실제 도로에서 스마트톨링 솔루션을 테스트하며 정확도를 끌어올렸다. 정부의 성능테스트를 통과해야 도로공사가 발주하는 사업 참가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능테스트에 참가해 지난 6월 인증서도 받았다. 경남 양산의 한 도로를 8개월간 빌려서 겨울에 쌓인 눈을 치워가며 기술 완성도를 높인 덕분이었다.

그런데 인증서를 써먹을 시장이 갑자기 사라졌다. 작년부터 6월까지 테스트에 참가해 인증을 받은 기업은 5곳에 이른다. 이들을 포함해 10개 내외 기업이 스마트톨링 기술에 투자해 왔다. 고속도로 차세대 요금징수시스템인 스마트톨링의 가능성을 보고 기술투자를 해온 기업들이 갑자기 사라진 시장 앞에서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톨링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없애는 대신 카메라로 차량 번호판을 촬영해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주행 중 자동으로 요금이 징수되니 도로정체가 개선되고 매연도 줄어들게 된다. 도로공사는 올 초까지만 해도 스마트톨링의 장밋빛 청사진을 대외에 제시했다. 2020년까지 고속도로 전 구간에 도입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스마트톨링 센터도 구축해 왔다. 스마트톨링 도입계획은 국토교통부가 2016년 확정한 제1차 국가도로종합계획에도 포함됐다.

그런데 갑자기 사업계획이 폐기됐다. 일자리 정책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도로공사 사장이 내린 결단이다. 혁신기술이 가져올 국민편익과 경제·환경적 효과보다 6700명 요금소 직원들의 일자리가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종이통행권이 사라지거나 최소화되면 요금소 직원들은 일거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도로공사는 외주인력이던 그들을 정규직화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이 중단돼도 당장 문제가 터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회적 부작용과 역기능이 있더라도 혁신을 우선해야 한다는 기술 만능주의를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당장 지난달에 인증서를 주고 한 달 만에 사업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정부 계획을 믿고 기술투자를 한 기업들에 이런 결과를 안겨서는 안 된다.

상황을 아는 이들은 사라진 버스 안내원과 지하철 검표원을 되살리는 게 일자리 창출에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는 조소 어린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미래세대에게 어떤 기회를 물려줄 것인가. 그들이 혁신을 지향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줄 것인가, 고속도로 요금소 직원이란 일자리를 줄 것인가. 단순하고 상식적인 질문에 대해 이런 답을 내놨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당황스럽다.

일자리가 중요하면 그들이 보다 가치 있게 일 할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주면 될 일이다. 이미 세계가 다 가는 기술적 흐름을 되돌려선 안 된다. 안경애 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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