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슘페터의 불길한 예언을 닮아간다

[이규화 칼럼] 슘페터의 불길한 예언을 닮아간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   입력: 2018-07-08 18:00
이규화 논설위원실장
[이규화 칼럼] 슘페터의 불길한 예언을 닮아간다
이규화 논설위원실장
"적개심이 증대하는 환경, 그리고 그 적개심에서 파생된 비우호적인 입법·사법·행정의 관행 때문에 기업가와 자본가는 마침내 기능을 중지하게 될 것이다. (중략)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이나 이해관계의 깃발을 내걸고 싸움을 거는 법이 없다."('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북길드)

조지프 슘페터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왜 자본주의가 해체되지 않을 수 없는지 설명하며 든 이유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외부 공격, 자본주의 발전과정에 내재된 특성과 눈부신 성취로 인해 자본주의가 역설적으로 붕괴한다고 주장했다.

그를 기려 2년마다 개최되는 슘페터학술회의가 지난주 국내에서 처음 서울대에서 열렸다. 지금 우리가 슘페터에 주목하는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기업가정신과 파괴적 혁신' 때문이 아니다. 그가 자본주의 붕괴 원인으로 지목한 기업가(자본가)의 소멸이 과연 일어나고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특히 이 나라에서.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몰락하는 것은 기업가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 기업가인데 기업가가 사라지면 자본주의도 운명을 다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행스럽게도 슘페터의 예언은 아직 예언에 그치고 있다. 기업가의 활동은 여전히 왕성하다. 우리는 글로벌 기업 구루들의 활동상을 매일 미디어를 통해 목도한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본주의 충만함이 느껴진다. 기업가의 멸종을 얘기하는 것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금 한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사회적 토대와 세력이 모르는 사이에 또는 공공연히 침식당하고 있다. 슘페터가 지적한 적개심은 아니더라도 광포한 분위기에 의해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목표들이 몰가치한 것으로 강요되고 있다.

누가 봐도 기업가들을 향한 공격은 도를 넘고 있다. 공정위는 기업 오너 일가의 지분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타깃으로 삼는 그 '불법적 행위'란 게 65%라는 약탈적 상속세율을 회피하기 위해 전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해 조장된 자위적 행위다. 재산권을 제약하는 상속법이 근인(根因)이다. 그뿐인가. 개인 비리를 꼬투리(불법이든 아니든)로 망신 주는 데서 나아가 경영권까지 내놓으라고 여론몰이를 한다. 근로시간단축을 밀어붙이고는 위반하는 기업주는 감옥에 넣겠다고 으름장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기업가가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와 대중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외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도 슘페터가 예언한 그대로다. 슘페터는 부르주아지(기업가)가 신념의 결핍으로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당시 미국의 예를 들며 지적했는데, 오늘날 한국에서도 기업가들은 대중과 정부의 공격에 순한 양처럼 끌려다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우익(友翼)이어야 할 보수 야당마저 존재감이 없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은 금융소득종합과세와 종부세 증세 등 문재인 정부가 마구잡이로 편 가르기 세금을 추진하고 있는 데도 지지층의 방패막이가 돼주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런 성향을 간파하고 자본주의 제도 내에는 자기파괴 경향이 있다고 슘페터가 말했는지 모른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기업가들의 용기와 의지, 그들과 함께하는 정치세력의 전투력이 그들의 상대에 비해 턱없이 허약하다는 의미다. 이 역시 현재 드러나고 있는 현상을 너무나 잘 설명한다.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했다. 자본주의가 끊임없는 기업가의 파괴적 혁신을 통해 발전한다고 역설한 그가 말년에 사회주의 도래를 예견한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자본주의에 경고만 하려고 했다고 변호하거나, 책이 나온 194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사상적 기조가 국가주의 집단주의 사회주의로 팽배해 있었기에 위대한 슘페터도 그 거센 파고에 자신도 모르게 휩쓸렸다든가, 겁을 집어먹어 패배주의자가 됐다고 냉소를 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자본주의 본질과 원동력을 꿰차고 있던 슘페터였기에 그의 예언은 불길하고 두렵다. 그는 끝으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비해 더 나쁜 속임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만약 그리 된다면, 자유는 속박되고 굴종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자유를 향한 대오를 다시 짜야 할 때다. 자본주의가 예뻐서가 아니라 자유 없는 목숨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DT Main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