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 법무법인 다온 변호사
![[포럼] 성희롱 가해자 처벌, 법과 도덕의 경계](http://contents.dt.co.kr/images/201807/2018070602102269053001[1].jpg "[포럼] 성희롱 가해자 처벌, 법과 도덕의 경계")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잔혹하다. 제약회사 직원들이 임원으로부터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했다거나, 항공사 승무원들이 분위기를 맞추려고 업무와 무관한 행사에 강제로 동원됐다는 등 폭로들이 잇따랐지만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았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직장 내 성폭력이 모두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은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을 포괄하는 말이다. 이 중 성희롱은 업무나 고용 등 관계에서 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현행법상 그 가해자를 형사 처벌 할 수 없다.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수 있는 행동이지만 범죄는 아니다. 단지 피해자들은 민사소송으로 소액의 위자료를 지급받을 수 있을 뿐이다.
2차 피해의 책임은 사업주에게 돌아간다. 오는 5월부터 시행되는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지체 없이 사실인지를 조사하고, 그 결과 사실로 확인되면 즉시 가해자의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특히 사업주는 성희롱 피해자에게 해고, 징계, 승진 제한 등 불이익하거나 부당한 인사 조치를 하면 안 되고, 이를 위반하면 징역형 등 형사 처벌을 받는다.
종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금지사항을 정한 것이지만 성희롱이 방지되는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업주는 막상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성희롱 문제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고, 지금도 유사한 처벌조항이 있지만 실제로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성희롱을 방조한 사업주까지 처벌하는데 왜 정작 직접적인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을까. 범죄와 비범죄의 기준을 정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도덕적으로 '나쁜 행위'를 죄다 처벌하는 것은 자칫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독일의 법학자인 조지 옐리네크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성희롱의 가해자는 약자가 아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강자인 경우가 많다. 약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강자를 형사 처벌하는 일은 법치주의의 정신에 부합한다.
국회에는 현재 천정배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형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지속적인 성적 언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해 성희롱을 형법상 범죄행위로 새로 포함시켰다.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어떻게 처리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국회가 성희롱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가늠자가 될 것이다.
나아가 사업주가 성희롱 가해자에게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행정처분에 불과한 과태료가 아니라 징역형까지 가능하도록 형사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성희롱 가해자가 회사에서 징계를 받으면 노동위원회에 부당하다며 구제 신청을 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경미한 징계를 문제 삼을 수단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성희롱은 범죄이고 가해자에게 상당한 책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직장과 사회에서 뿌리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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