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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SF적 상상력으로 경계를 넘자

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입력: 2018-06-21 18:00
[2018년 06월 22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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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SF적 상상력으로 경계를 넘자
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필자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다닐 때는 매년 공상과학 그림 그리기나 글짓기 대회를 했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바닷속 해저 탐험, 달나라 우주선 여행에 대한 상상을 도화지와 원고지에 마음껏 펼쳐 보이던 그때만 해도, 아주 먼 어쩌면 다가오질 않을 미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때 상상은 지금 다 현실이 됐다. 우버, 인텔이 플라잉카, 항공택시 사업을 추진 중이고, 해저 보행 로봇 '크랩스터'가 우리 순수기술로 개발되어 얼마 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1961년 러시아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첫 우주 비행에 성공한 이래, 지금은 민간인도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상상이 기술과 만나 현실이 되고 있다. 스스로 운전도 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하던 '전격 Z작전(1985-1987년)'의 슈퍼카 '키트'는 인공지능 기능이 탑재된 자율주행자동차로 상용화 직전 단계까지 와있다. 어디서나 데이터를 송수신하고, 허공에서 컴퓨터 아이콘을 다루며, 눈으로 사람을 분별하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 속 모습은 지금 클라우드, 3D, 홀로그램, 생채인식 기술로 구현 가능하다.

과학기술은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왔다. 달나라에 가고 싶다는 바람이 로켓을 쏘아올리고, 병을 고치고 싶다는 열망이 백신을 만들고,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전 세계를 인터넷으로 연결했다. 과학기술은 실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논리적 추론에 근거해 문제를 해결해 왔지만, 그 기저에는 공상과학(SF:Science Fiction)적 호기심과 상상력이 있었다.

디지털혁명 시대에 필요한 건 바로 이 재기발랄한 SF적 호기심과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SF적 상상력은 쓸데없는 공상(空想)이 아니라, 현재를 바라보는 유용한 관점이면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 문제 해결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SF작가를 컨설턴트로 고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미래 인재는 여러 분야의 경계를 '조화'롭게 넘나들(boundary-crossing)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조화'는 '이종간의 관계를 발견하는 능력이고, 특정한 해답을 전하기보다는 폭넓은 패턴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미래 인재는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선택이 아닌 다중적인 선택과 혼합된 해결책을 추구하며 다층의 정체성을 가지고 활기 있는 삶을 살아간다. 스티브 잡스의 전공은 철학과 물리학이었고,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에서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일론 머스크는 경제학과 물리학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이과 진로가 명확하게 나눠지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모습이다. 글 쓰는 이공계생, 색소폰 부는 프로그래머, 요리하는 건축가 등이 낯설지 않을 때, SF적 이종교합, 즉 융·복합이 가능해진다. SF적 상상력은 이런 자유로운 경계 넘나들기에서 시작된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자칫 인간은 소외될 수 있다. 최근 뜨는 언택트(un-tact) 마케팅처럼 말이다. 물건은 기계가 대신 주고, 사람은 가상의 플랫폼에서 키보드와 모니터로만 상대한다. 다양한 정치적 신념과 정체성이 혼재하는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는 여러 개의 분산된 자아, 분인(分人)을 갖고 있다. 일종의 디아스포라적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다양한 분인들의 우연한 마주침, 그 경계를 즐기는 삶 속에서 SF적 상상력도 꽃을 피울 수 있다.

SF적 호기심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데 현실적 문제에만 천착하면 오히려 해답이 보이질 않을 때가 많다. 우리나라 SF 시장은 외국보다 열악한 편인데, 밀레니얼 세대가 많이 진출해서 생기발랄한 상상력과 비판정신을 펼쳐 보이면 좋겠다. 지금 젊은 세대의 혼돈과 경계 넘나들기가 10년 후, 20년 후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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