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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칼럼] 악마는 `의심`에 있다

박미영 정치부 차장 

박미영 기자 mypark@dt.co.kr | 입력: 2018-05-27 18:00
[2018년 05월 28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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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칼럼] 악마는 `의심`에 있다
박미영 정치부 차장
비핵화 담판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의 '밀당(밀고 당기기)'을 보고 있자니 롤러코스터를 탄 듯 현기증이 날 정도다. 역사적인 미북정상회담을 향해 내달리는가 싶다가도 이내 손 쓸 틈 없이 나락으로 곤두박질한다. 그러다 또다시 만남을 다짐한다. 하지만 또 무슨 변수가 튀어나와 관계가 틀어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반전과 반전의 연속, 예측 불허의 엔딩. 어떤 드라마도 이만큼 다이내믹 할 순 없을 것 같다.

미북 간 줄다리기를 보고 있자니 문득 영화 '곡성'이 떠올랐다. 뜬금없이 개봉한 지 2년도 더 지난 영화라니. 영화 곡성은 '의심'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묻는다. 악이란 무엇인가 하고. 사람들이 모두 죽고 곡성이라는 작은 마을이 피로 물들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영화는 말한다. 악은 당신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끝없는 '의심'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에 있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혹자는 "악마는 (말폭탄으로 미국을 자극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부상"이라고도 했다.

의심의 또 다른 말은 '회의(懷疑)'다. 회의는 확실성을 의심하는 정신적 상태나 태도다. 미국과 북한이 그토록 접점을 찾지 못하는 근원적 악마는 의심, 즉 회의에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의심을 걷어내고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진정성과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려고 양국을 오가며 보증을 섰다. 그러나 미북정상회담은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좌초될 뻔 했다.

미북 간 신경전은 표면상으론 감정 다툼으로 보이지만, 미북 간 비핵화 해법의 간극차가 좁혀지지 않기 때문에 신경전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비핵화 해법차는 근본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다.

미국의 의구심은 북한의 '전과'에서 비롯됐다. 판문점 선언 이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치가 높아졌지만 늘 한쪽에서는 북한을 신뢰하는데 대한 회의론이 존재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되풀이된 북한의 합의 파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표명 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과거-현재-미래의 핵을 모두 폐기하는 '원샷' 비핵화에 합의하면 북한이 '딴생각'을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설령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이 이에 합의한다 해도 미국의 의구심은 완전히 떨쳐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믿지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체제보장' 약속 만으론 안된단다. 하나를 주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기브앤 테이크' 방식으로 하잔다. 미국의 약속이 이행되는 것을 하나하나 확인하면 미국을 한번 믿어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김정은의 '존엄'을 인정하고 리비아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최후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장하란 것이다. '리비아' 단어만 나와도 북한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만 봐도 북한은 어쩌면 경제적 지원보다 김정은이 계속 나라를 운영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더 우려하는 것 같다.

믿음의 부재도 문제지만, 무조건적 과신도 화를 부른다. 청와대는 북한에 대해 완전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동맹인 미국을 못 믿는 것처럼 느껴진다. 보증을 잘 못 서면 패가망신하고, 중매를 잘못 섰다간 뺨이 석 대란 말이 있지 않나. 보증을 서려면 상대의 상환능력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중매를 서려면 두 사람의 조화를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막연한 신뢰와 낙관론에 치우치다 보니 중요한 순간마다 '코리아 패싱'이란 꼬리표가 따라 붙지 않았는가. 판을 만든 우리 정부는 게임 플레이어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지 냉철하게 따져 봐야 한다. 중재자는 게임 플레이어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또 낙관론에 치우친 참모들의 의견에 의존해 결정하는 폐쇄형 구조가 아닌 전문가 등 집단 지성의 의견을 경청하는 개방형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모든 의심이 나쁜 것은 아니다. 데카르트는 '생각(의심)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했다. 이를 '방법적 회의'라고 하는데, 의심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의심 만이 신뢰를 만들고, 이 신뢰는 진리 추구의 밑바탕이 되고 역사의 바퀴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미국도 북한도, 우리 정부도 모두 의심하라. 이 의심이 끝일 리 없다는 강력한 믿음으로 한반도 평화의 길로 가는 해법을 찾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올바르게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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