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흔들기에 국내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들까지 '반대' 돌아선 탓
현대차그룹, 단기적으로 일부 계열사 사업 매각으로 순환출자 고리 끊는 작업 먼저 할 듯
가능한 차기 지배구조 개편안에 촉각
현대차그룹, 단기적으로 일부 계열사 사업 매각으로 순환출자 고리 끊는 작업 먼저 할 듯
가능한 차기 지배구조 개편안에 촉각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21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오는 29일로 예정했던 분할합병계약 승인에 대한 임시 주주총회를 해제하고 다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모비스와 글로비스를 0.61대 1로 분할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했다. 현대모비스의 국내 A/S·모듈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로 하는 안이었다.
엘리엇에 이어 세계 1, 2위인 의결권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s Services)와 글라스루이스 등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여기에 현대모비스 지분 9.8%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권과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와 대신지배구조연구원 등이 결정적으로 반대를 권고하면서 현대차그룹이 개편안을 전면 보류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대주주 측의 모비스 우호지분(30.2%)이 외국인 지분(47.8%)에 비해 적어 주총 통과를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도 이사회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합병을 앞두고 주요 시장과 주주들에 대한 사전 소통이 부족했다는 내부 비판도 이번 결정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이날 입장자료를 내고 "여러 주주·시장과의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을 절감했다"며 소통 부재를 인정했다.
업계 일부에서는 정 부회장이 지난 15일 미국 뉴욕을 방문해 돌아온 직후 곧바로 이사회를 열고 이번 결정을 한 배경 역시 현지 여론이 예상보다 부정적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주주들이 이번 합병에서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는 점도 현대차그룹의 분할·합병 강행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종가가 24만1500원이고, 분할·합병을 반대해 행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은 23만3429원이라 3.5%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주총 직전까지 주가가 23만3429원을 밑돌면 주주들이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주가 하락에 주주들이 무더기로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어차피 29일 주총에서 모비스 분할 합병안은 통과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당분간 시간을 두고 주주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 다시 지배구조 재편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그룹이 고려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엘리엇 등이 문제로 제기한 모비스와 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을 재조정해 재추진하는 방법이 우선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엘리엇이 다시 공격할 소지가 높아 부담이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지배구조 재편 없이 정몽구 회장 등 오너가가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면서 지주사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지분구조는 모비스가 현대차의 지분을 20.78%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차는 기아차의 지분 33.88%를 보유하는 구조다. 여기에 기아차가 모비스의 지분 16.88%를 보유하면서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돼 있다. 이 상황에서 지배구조 재편 없이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 지분 16.88%를 정 회장이 매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최소 4조원 이상의 현금이 필요하다는 점이 부담이다. 이뿐 아니라 산업 지주회사가 금융계열사를 소유할 수 없다는 금산분리 원칙을 해소하기 위해 현대차 자회사인 현대캐피탈을 매각하거나 금융 지주사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그러나 현대차가 현대캐피탈을 매각할 경우 차량 판매를 위한 금융 프로그램 제공이 어려워져 주력 자동차 사업이 흔들릴 수 있고, 금융 지주사로 가려면 오너 일가의 추가 지주사 지분 확보가 필요해진다. 따라서 이 시나리오는 실현성이 높아 보이지 않고,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그룹은 우선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압박에 따라 글로비스 등 계열사의 일부 사업을 매각하고, 이 자금으로 기아차의 모비스 지분을 사들여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방안이 단기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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