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ISS 업고 지배구조 압박
정부·여당, 방어수단 도입 '뒷짐'
재벌특혜 논란 속 반대 입장 고수
"경영권 과도한 간섭" 재계 반발
정부·여당, 방어수단 도입 '뒷짐'
재벌특혜 논란 속 반대 입장 고수
"경영권 과도한 간섭" 재계 반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찬반 공방이 확산되면서 해외 투기자본의 국내 대기업 경영권 침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단기수익만을 추구하는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이 지속되면서 야당과 재계를 중심으로 방어수단을 다양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당을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에서는 이를 재벌특혜 라며 반대하고 있다.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 때 마다 이같은 찬반 공방만 반복하면서, 해외 투기자본의 '먹튀' 행위를 매번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반복되는 해외 투기자본 공습…이번엔 현대차가 먹잇감 = 엘리엇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 반대 공세는 거액의 차익을 남기고 먹튀한 소버린 사태를 연상시킨다.
엘리엇은 오는 29일 열리는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안건에 반대하겠다는 의견을 공식화했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을 시작으로 추진 중인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이 모든 주주에게 공정하지 않은 조건이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시장상황과 관계없이 절대수익만을 추구하는 헤지펀드 특성상 소액주주 권리와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경영권을 공격한 후 이익을 취하려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앞서 1999년에도 미국 헤지펀드 타이거펀드가 SK텔레콤의 지분 6.7%를 매입한 후 경영진 교체를 요구했고, 이를 통해 약 6000억원의 차익을 실현한 바 있다. 2003년에는 영국 소버린자산운용이 SK 지분 15%를 매입해 2대주주 까지 올라선 후 경영진 교체 등을 요구했다. 소버린은 당시 8000억원이 넘는 이익을 챙긴 후 한국을 떠났다.
2004년에는 영국 헤지펀드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을 상대로, 2006년에는 미국의 억만장자 칼 아이칸이 KT&G를 상대로 똑같이 경영권을 위협하며 차익을 챙겼다.
엘리엇은 2015년 이후부터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지배구조에 적극 관여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사 ISS의 지지를 등에 업고 압박을 가하는 것은 과거 악텔리온, 모토로라 등 글로벌 기업 경영권 개입 당시와 유사하다.
◇엘리엇 방지법 마련 시급…야권·재계 한 목소리 = 해외 투기자본의 공습에 야권과 재계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소액주주 권리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나친 경영권 간섭은 오히려 기업에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5일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인 '차등의결권'과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앞서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상법 개정안도 현재 해당 상임위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현재 자기주식취득, 황금낙하산 등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이 있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재무구조가 악화될 부담이 있어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차등의결권은 특정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신주인수선택권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을 경우, 신주를 발행할 때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두 제도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 이미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사실 이 법안은 2010년 법무부 주도로 추진된 바 있지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과거 시민단체가 신주인수선택권 도입을 반대했던 것은 기업이 순환출자 등을 통해 경영권을 충분히 방어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우리 기업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순환출자 고리가 대부분 해소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제도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여당·정부는 뒷짐…국회 큰 산 넘을 수 있을까=기업 경영권 방어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은 야당을 중심으로 공감대가 이뤄져 있지만, 여당의 반대입장이 확고해 이번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반기업 정서가 강한 정부 여당은 이른바 '엘리엇 방지법' 자체가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해외 투기자본의 폐해를 차단할 마땅한 근거가 없어 모니터링만 할 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윤상직 의원의 개정안은 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을 주총에서 결정하도록 제한을 강화한 부분이 있어 여당과 협상의 여지가 있다"면서도 "다만 여당과 정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법이 아니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은국기자·김민수기자 ceg420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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