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먹거리 없이 구호만 반복
출연연 기간제직원 정규직화 등
무리한 추진으로 연구현장 혼란
출연연 기간제직원 정규직화 등
무리한 추진으로 연구현장 혼란
내일 '51회 과학의 날'… 과학기술 정책 현주소
4월 21일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인 '과학의 날'이다. 과학의 날은 1967년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 전담부처인 '과학기술처'가 출범한 날이기도 하다. 51회 과학의 날을 맞아 국내 과학기술 정책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과학기술처가 출범한 1967년 당시 개발도상국 중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만든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앞서 인식한 덕에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 자동차·철강·조선 등 중화학공업의 기반을 마련했고, 반도체,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등 첨단 기술로 세계 10권에 속하는 경제 성장을 이뤘다. 국민들이 정부 수립 후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성취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기 속에 출범한 과기정통부=지난 반세기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 중심에 서 있던 과학기술처는 1998년 '과학기술부',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으로 계속해서 변모해왔다. 하지만 부처명이 바뀌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위기감도 함께 고조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2위 수준인 연간 20조원에 가까운 연구개발(R&D)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수년째 이어지고, 기존 주력 산업이 쇠퇴하는 가운데 뚜렷한 미래 먹거리도 나오지 않고 있다. 마땅한 해결책 없이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 구호만 반복하면서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도 점차 식어갔다.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함께 문을 연 문재인 정부와 과기정통부는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을 기조로 기초연구·국민생활·혁신성장 등의 중점 방향을 제시했다. 기존 국가 주도의 추격형 R&D에서 벗어나 연구자 중심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기초연구 기반을 마련해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시도하고, 경제 성장의 도구를 넘어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추구한다. 눈앞에 다가온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혁신적인 기술로 경제 성장을 뒷받침한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4월 과학의 달을 기점으로 정부는 그동안 내놓은 총론에 따라 구체적인 각론을 제시한다. 과기정통부는 이 달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2018∼2022), '대한민국 R&D 혁신 방안' 등 주요 정책들을 발표할 계획이다. 또 '국민생활과학포럼', '미래청년포럼' 등 젊은 과학기술인을 지원하고 국민들의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소개하는 행사도 연다.
◇구태의연한 관행에 실망 안겨=과학기술계는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방향에 대해선 공감하면서도, 실행 방식에 대해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적폐 청산'을 내세운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에선 전 정부들과 다름없는 구태의연한 인사행태를 이어가고 있어 논란이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거버넌스는 지난 17일 출범한 대통령 직속의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범부처 R&D 정책 조정 기능과 예산권 등을 부여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가 핵심이다. 청와대에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간사와 4차 산업혁명위원회 간사를 맞아 연구현장과 정부, 청와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과학기술보좌관을 뒀다.
현재 이 같은 주요 조직의 요직은 모두 대선캠프 출신으로 채워졌다. 초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된 박기영 순천대 교수는 황우석 사태 연루된 행적으로 과기계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나흘 만에 자진 사퇴했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염한웅 부의장(포스텍 교수)은 음주운전으로 2차례 면허 취소 처분을 받아 논란이 됐다. 이어 과기정통부 고위직은 지난해 말부터 전 정권에서 임명한 산하 기관장들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자진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연말 박태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사퇴를 시작으로 최근 조무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등이 특별한 사유 없이 줄줄이 물러났다.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연구현장 혼란=정부는 25개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총괄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직에도 역시 대통령 캠프 출신인 원광연 KAIST 교수를 임명했다.
정부와 연구회는 지난해 10월부터 국정과제인 비정규직 정규직화 원칙에 따라 출연연 기간제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당초 연구기관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할 시간적 여유 없이 올 3월까지 정규직 전환을 마친다는 무리한 일정을 잡아 연구현장의 큰 혼란을 가져왔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에 따르면 25개 출연연 가운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계획을 수립한 17개 출연연은 현재 1186개 기간제 비정규직 업무만 정규직으로 전환해 전환율은 59%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일부 기관에선 전환 기준과 방식, 규모 등에 대해 기관과 직원 간의 갈등이 여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배구조는 변했지만 기관장 선임, 예산 배정과 운영 등에서 막강한 권력을 독점하고 산하 출연연을 과도하게 지배·개입하고 있는 정부 부처 밑에서 연구회가 실질적인 권한이 거의 없다는 것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