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칼럼] `러스트 벨트`의 눈물

[예진수 칼럼] `러스트 벨트`의 눈물
    입력: 2018-04-15 18:00
예진수 선임기자
[예진수 칼럼] `러스트 벨트`의 눈물
예진수 선임기자


편의점 삼각김밥은 신선도와 밥맛에 따라 판매량이 좌우된다. 일본 최대의 편의점 체인 로손은 전자레인지 가열 후의 식감까지 고려한 삼각김밥 전용 품종을 직접 농사로 조달한다. 예전에는 편의점 기업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농업 생산 법인의 임원 4분의 1은 농민이어야 한다는 규제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니가타 시를 국가전략 특구의 대규모 농업 개혁 거점으로 선정하면서 이 같은 규제를 없앴다. 로손은 니가타 시에서 유력 농가들과 공동출자에 의한 농업 생산 법인을 만들어 편의점에 필요한 쌀을 조달하고 있다.

한국에서 추진 중인 '규제 프리존 특별법'도 일본의 국가 특구제도를 참고해 만든 것인데, 1년 6개월째 국회 문턱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로손처럼 새로운 농업 혁신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규제 혁파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규제 개혁으로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야 고용이 늘어난다. 현재의 고용쇼크는 재난수준이다. 실업률이 3월 기준으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일자리를 잃어 실업급여를 받는 고용보험 가입자 수도 올해 1분기 62만800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와 성동조선의 법정관리 등으로 고용사정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1970년대부터 산업공단으로 조성된 포항, 울산, 창원, 여수, 군산 등 남동 임해지역이 장기적으로 한국형 '러스트 벨트(Rust belt·제조업 쇠락 지대)'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남동임해공단은 한 때 호황을 구가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주도했던 소위 '차화선(자동차·석유화학·선박)' 지역이다. 한국주력업종이 포진한 이들 지역의 쇠퇴는 규제 개혁 지연 등으로 산업 역동성과 경쟁력이 중국에 밀린 결과다. 과거 조선 산업 중심지였지만 2000년대초 세계적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으면서 실업률이 치솟던 스웨덴 말뫼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스웨덴 언론은 '말뫼가 눈물을 흘렸다'고 보도했다.

'러스트 벨트'가 늘어나는 것은 안타깝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지역별 나눠먹기 식으로 쇠락기업에 혈세를 쏟아붓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후퇴할 때가 있어야 전진할 때의 탄력성도 커진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새 살이 돋아난다. 벌어들인 영업 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한계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버티기식 경영'을 용인하면 자동차·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주요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의 전반적 틀이 흔들리게 된다. 부도위기에 내몰린 한국지엠이 일자리와 지역 경제를 볼모로 배짱을 부리는 횡포를 용납해서도 안 된다.

'러스트 벨트'의 눈물을 닦아주려면 구조조정과 효과적인 규제완화, 지역 재생 프로젝트가 입체적으로 가동돼야 한다. 한 때 '아호(바보)노믹스' '아베노미쿡스'(아베만 웃는 정책)로 조롱받던 아베노믹스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로컬 아베노믹스의 성공 사례 중 하나가 '평생 활약의 동네'다. 이 커뮤니티는 노년층들이 평생 축적된 역량과 지혜로 지방 경제를 살리는 '고령 중심 지역 공동체'다. 독일의 '팩토리 베를린'은 낡은 양조장 등 옛 공장 지대를 스타트업의 오아시스로 탈바꿈시켰다.

한국의 러스트 벨트 살리기 전략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두뇌역할을 하는 연구개발·디자인 본부는 서울, 굴뚝(공장)은 지역이라는 이분법적 산업 입지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주요 지역에 로봇기술, 가상현실(VR), 첨단 디자인 기능으로 무장한 스마트 공장을 늘리는 '다핵 개발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러스트 벨트' 지역을 신산업 벨트로 바꾸기 위한 '신산업 지원 센터'도 세울 필요가 있다. 러스트 벨트를 거센 외풍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뚝심 지대'로 바꾸려면 구조조정을 통해 제조업의 회복 탄력성과 일자리 복원력을 동시에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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