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게임학회장
![[포럼] `민속놀이` 된 스타크래프트](http://contents.dt.co.kr/images/201804/2018040402102251102001[1].jpg "[포럼] `민속놀이` 된 스타크래프트")
우리 민족 전래의 민속놀이는 종류도 많다. 연날리기, 제기차기, 윷놀이, 쥐불놀이 등은 필자가 어린 시절에 동네 개구쟁이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많이 했던 민속놀이다. 말이 좋아 민속놀이지 놀이가 아니라 '사고'가 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쥐불놀이는 해충구제라는 목적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날 논둑과 밭둑에 불을 놓는데, 쥐불을 놓게 되면 겨울을 지낸 들쥐나 메뚜기, 해충이 알을 낳아 놓은 잡초나 서식지를 태워 버리기 때문이다. 취지야 이렇듯 좋았겠지만 시골 개구쟁이들에게 취지 따위야 별 관심도 없었고, 달 밝은 밤에 깡통에 나무토막을 넣어 불 붙여 돌리거나, 이웃집 동네에 가서 몰래 볏짚에 불을 붙이고 오거나, 아니면 쳐들어가 역시 평소 사이가 안 좋은 애들을 발견하는 즉시 나무칼로 흠씬 두들겨 패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민속놀이 중 이웃 동네 볏짚에 붙인 불이 옮겨붙어 근처 곡식창고가 다 타버리거나, 나무칼에 맞은 옆 동네 애들이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져 목발을 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놀이인지, 행패인지도 모호하지만 어쨌든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한 가지 덧붙이면 쥐불놀이와 함께 필자가 했던 '불깡통놀이'는 6·25 이후 깡통이 보편화하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전쟁 중에 공수된 군수 물자 가운데 통조림이 있었는데, 그 깡통을 놀이 도구로 이용하면서 쥐불놀이와 결합됐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네 형들은 '불깡통놀이'를 우리 민족 전래의 민속놀이라고 가르쳐줬으니 어처구니 없을 뿐이다.
그런데 필자야 어린 시절을 민속놀이와 함께 즐겁게 보냈는데 지금 청소년들의 추억은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시골에서 자라지 않고 도시의 콘크리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애들의 추억은 무엇일까. 얼마 전 의문이 풀렸다. 지금 청소년들의 민속놀이의 추억, 그것은 놀랍게도 '스타크래프트'라고 했다.
지난 2월 필자가 재직하는 중앙대에서 스타크래프트 청소년 e스포츠 대회가 열렸다. 1000명이 넘는 지역 예선전을 통과한 8명의 고교생이 모여 결승전을 치른 대회다. 대학에서 e스포츠 대회가 열린 것도 처음이고, 학술강연도 함께여서 그런지 부모와 함께 온 학생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두 시간을 넘게 줄을 서서 입장한 한 고교생에게 "왜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나요"하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우리들의 민속놀이잖아요"였다.
머리를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스타크래프트는 이번 대회에 참석한 고교생이 태어나기도 전에 출생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1998년에 처음 출시됐는데 이번 대회에 참석한 고교생은 1999년이나 2000년생이다. 불깡통놀이처럼 스타크래프트는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존재한 '민족 전래의 놀이'로 인식되고 있는 듯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게임을 둘러싼 기성세대의 인식은 불편하기만 하다. 흔히 '신데렐라법'이라 불리는 게임 셧다운제가 대표적이다.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심야 6시간 동안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규제다.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제정된 이 규제는 요즘 청소년들이면 누구나 보유하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이용한 모바일게임의 경우 적용을 유예한 '절름발이 법'이다.
최근 거리를 다니다보면 소위 '스몸비'가 도처에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몸비는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다. 횡단보도에서도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길을 건너고,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도 이어폰을 끼고 화면을 들여다 본다. 밤에 잘 때도 베갯머리에 놓고 있다 진동이 울리면 무슨 문자가 왔는지 확인한다. 가히 스마트폰 중독을 넘어 '스마트폰 노예'라고 불러도 좋을 지경이다. 그러나 아무도 '전국민 스마트폰 셧다운법'이나 '보행중 사용금지법'을 제정하라고 떠들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마트폰은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하는 '민족적 기기'이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변화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 국민 누구나 게임을 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노년세대가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를 민속놀이로 부를 때 게임은 오랜 편견과 탄압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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