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디지털 전환 시대와 `국부론`

[포럼] 디지털 전환 시대와 `국부론`
    입력: 2018-03-12 18:00
김준연 SW정책연구소 산업제도연구실장
[포럼] 디지털 전환 시대와 `국부론`
김준연 SW정책연구소 산업제도연구실장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원래 '국부의 본질과 원천에 관한 고찰'이 정식 명칭이다. 10년에 걸쳐 완성한 이 대작에서 아담 스미스는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을 개선하며 이뤄진다고 했고, 생산에 수반하는 기계장비의 도입을 위해 자본축적이 필요하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유경쟁에 의해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국부 증진의 정도(正道)라고 했다. 한편, 자본축적에 대한 맑스의 생각은 자본가가 제품을 생산을 하는 것은 단순 물물 교환을 위해서가 아니고 보다 많은 잉여가치를 산출하기 위해 노동력의 가치, 즉 임금보다 더 많은 노동을 시키면서 노동자가 만들어낸 가치를 착취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맑스의 자본축적은 이러한 반복된 잉여가치 창출의 누적물인 것이다.

그리고 맑스가 세상을 떠난 1883년 2명의 경제학자가 태어났는데 바로 케인스와 슘페터다. 먼저 1930년대 경제 위기에서 그 가치를 발휘한 사람이 바로 케인즈다. 케인즈 이론의 핵심은 정부가 대공황 타개를 위해 지출을 늘려 유효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대량 실업을 없애고 완전 고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생각을 1933년 루즈벨트가 이어받아, 도로 건설, 전력망 확충 등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각종 사회보장법을 병행하는 새로운 정책, 즉 뉴딜정책으로 구현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주기적이며 반복적인 경제 불황을 경험하면서 투입위주의 단기 균형을 중시한 케인즈보다 기술혁신을 장기적 경제성장의 근원으로 보는 슘페터의 철학이 뒤늦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를 이어받은 경제학자들이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국가혁신체제라는 틀로 제시했다. 프리먼과 룬드발에 의해 발전된 이 이론은 한마디로 국가단위에서 지식의 습득, 창조, 확산, 사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는가에 관한 개념이다. 주로 OEDCD와 EU에서 그 이론적, 정책적 유용성을 인정하면서 이 이론은 기술혁신과 과학기술정책을 분석하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혁신체제 이론의 모범생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모방학습, 전략산업 선택과 각개대응이라는 국가혁신체제의 운영지침을 상정하고 이를 충실하게 이행한 결과다. 부족한 기술역량은 선진국으로부터 하청(OEM)을 받아 배우고, 제한된 자원은 특정 산업을 선별해서 투입함으로서 단기간에 경제추격을 이룩했다. 다만, 기술을 학습하는 방식이 모방이다 보니, 외국과의 협력은 기술도입이 목적이었고, 그 내용도 기술구매와 실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해결이 주가 됐다. 독자적인 신기술 개발 혹은 공동 개발은 꿈도 못 꿨다. 기술혁신이나 설비투자에 투입가능한 자본의 부족과 금융시장의 미성숙은 정부가 재원으로 충당하며 시장이 감당해야할 투자 리스크를 떠안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술개발이 끝나서 이미 시장이 형성된 분야에 대한 투자였기 때문에 정부가 특정 산업을 선택해도 불확실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방형 성장이다 보니 시장에서도 창의인재보다는 수입된 기술의 소화와 개량에 적합한 인력을 선호했다. 창의적이거나 꼼꼼한 설계보다 실행이 중시되는 문화도 이때 정착되었다. 기술발전의 목표가 선진국 경로를 빠르게 추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실패와 비용이 수반되는 탐색보다는 정해진 경로에서 실행과 응용을 효과적으로 하는 연구 문화가 공고화 됐다. 정해진 경로에서 기업들이 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을 도입하고 응용하도록 지원하는 각종 진흥기관과 연구소들이 설립되어 지금의 한국형 민관협력체제가 완성됐고, 그에 부합하는 평가체계도 자리 잡았다. 혹자는 반도체, TFT-LCD와 CDMA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겠지만, 이는 국가혁신체제의 효과적 운영의 결과라기보다 특정 기업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례이며, 산학연의 대표적 합작품인 CDMA도 추가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제 세계 경제는 한국이 계속 OEM에 머물게 두지도 않고, 중국 인터넷기업인 바이두 조차도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듯이 산업간 경계가 재편되고 있어 기존 국내 산업은 대대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미국의 무역보복이 오히려 우리에게 불똥이 튀고 있어 향후 불리한 국제무역 환경이 예견되고 있다. 그나마 저성장, 저출산의 현실 속에 우리 사회가 4차 산업혁명에 올라타야 한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어 다행이다.

그럼 새로운 혁신체제로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일찍이 스탠포드 대학의 데이비드 교수는 특정 제도들이 형성되면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기존 제도들이 상당기간 성공적인 결과를 보인 경우 특히 더욱 그러하다 했다. 이것이 '성공의 실패'라는 역설이다. 성공의 추억을 가진 우리 사회가 기존 질서체제와 새로운 혁신 간에 충돌을 경험하는 반면, 신흥 경제대국인 중국은 인공지능, 핀테크, 블록체인으로 사회를 혁신하며 훨훨 나는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위협을 알고도 그 전환을 못해 추락하는 것을 시스템의 전환실패라고 한다면 우리는 바로 이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 전환실패는 제도만이 주범이 아니기에 기존 규제 몇 개 제거해서 극복되지 않으며, 시스템 운영에 관한 것이기에 전략산업 몇 개 선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또한 기존 시스템에 R&D와 같은 재원투입을 늘리겠다는 케인즈식 발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뻔하다.

어렵지만 어떻게 새로운 기술혁신에 기존 질서를 조응시킬 것인가라는 슘페터식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기술의 기술이며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소프트웨어를 국가혁신시스템의 중앙에 두면서 산업별로 전개되는 새로운 혁신의 패턴에 따라 기술-인력-제도-정책-금융-기업의 기존 관계를 해체하고, 창조적으로 재조합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수요와 산업, 그리고 가치를 창출하는 新국부 창출론을 고민해야 한다.

다음 편인 '디지털 전환에 대응하는 산업혁신론'에서는 소프트웨어를 품은 국부론을 산업별 혁신특성과 연결하며 구체화하는 방안을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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