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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발언대] 화장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연습

김효영, 투고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입력: 2018-03-11 18:00
[2018년 03월 12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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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발언대] 화장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연습
김효영, 투고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알바노조에서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출근 전 화장 및 복장 준비에 걸리는 시간을 묻는 질문에 평균 29분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한 응답자는 꾸미는 것이 강제는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있으니 본인도 안 할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다른 응답자는 20명 가까이 되는 사업장에 안경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다들 렌즈를 끼고 있는 상황을 꼬집었다.

한 유명 뷰티유투버는 '파데 프리(Foundation Free)' 관련한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파데 프리는 말그대로 파운데이션(Foundation)에서 자유(Free)로워지자는 의미다. 이 유투버는 이제 막 파데 프리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 날을 정해 접근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또한 그동안 장보러 갈 때, 운동하러 갈 때에도 메이크업에 20분 정도를 투자했던 본인의 과거를 고백했다.

집 앞 슈퍼는 몰라도 조금이라도 큰 마트에 갈 때면 피부 화장에 눈썹이라도 꼭 그리고 나갔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직장인에게 평일 아침은 5분, 10분이라도 더 자고 싶어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다. 필자는 그동안 그 바쁜 아침에 화장하는 데만 꼬박 15분을 소비했다. 쿠션을 두드리고, 아이라인, 눈썹까지 그리는 최소한의 화장에도 10분이 걸린다. 어쩔 수 없이 화장을 못하고 나온 날에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꾸역꾸역 화장을 했다.

화장은 일종의 예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피치못할 경우를 제외하고 화장하지 않은 날이 없다. 집에 돌아오면 늘 피부가 답답했다. 화장 지우는 일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얘기다. 심지어 피곤한 날엔 화장도 안 지우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를 만났다. 약속장소는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였다. 친구는 풀 메이크업을 하고 나간 내 모습과는 대조되는 민낯으로 나타났다. 친구는 민낯으로 생활한지 약 3개월 정도라고 했다. 시작은 동기부여였다. 어느 날 동료교사가 화장을 안하고 학교에 출근했다. 그때 든 생각이 '그럼 나도 하지 말아볼까?'였다. 여기서부터가 출발이었다. 그동안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왠지 '나'라는 사람의 한꺼풀을 벗고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민낯 출근을 단행했지만 한동안은 괜히 자신감도 떨어지고 남들 시선을 의식했다고 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주변에서 화장을 가지고 얘기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보수적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한 교장, 교감의 한 소리도 없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 관련 문제가 계속 불거지며 이슈로 떠오른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오히려 반 남자아이들이 "선생님 왜 오늘 화장 안하고 왔어요?"라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한 것이 더욱 놀라웠다고 한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여자는 성인이 되면 화장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아이들에게도 심어진 것이었다.우리는 그동안 정말 자기만족을 위해서 화장을 해왔는지, 혹은 가부장적인 사회 속 여성을 억압해온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강요당한 것인지 깊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화장을 하는 이유는 외모의 결점은 가리고 장점은 살리는데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목적을 넘어 남들 시선에 창피하지 않기 위해 혹은 모두 하기 때문에 화장을 하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화장이 여성에 대한 '젠더(Gender)'억압으로 작용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화장하는 남자'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례도 있다. 이들은 사회에서 화장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의 고충을 직접 느끼고 그 부당성을 알리려는 취지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총 13명이 참여해 비비크림, 팩트, 블러셔, 쉐딩, 아이섀도우, 뷰러, 마스카라 등을 2주간 직접 사용했다.

이들이 꼽은 화장의 장점은 달라진 외모에 대한 만족감이었으며 단점은 투자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한 참가자는 "여자친구가 화장을 했을 때 왜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기 싫어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 역시 "화장을 하니까 행동 하나하나 조신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강박관념에 갇히게 되더라"라며 "마음가짐이나 행동까지 사회적인 시선에 맞게 재단되는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교사 친구 역시 화장을 하지 않고 다니면서 그동안 젊은 남자 교사들이 얼마나 편하게 다녔는지 처음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제는 '어떻게 화장을 안 하고 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화장을 중요한 자리에서만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등 필수나 의무가 아닌 선택의 범주에 두었으면 한다. 필자 역시 아직 화장에서 완벽하게 해방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해방되는' 연습을 시작하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전에는 피부 화장이 뭉치거나 들뜨면 그 스트레스가 하루의 기분을 좌지우지했지만 최근에는 거울을 보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거울 볼 일이 줄어들면 곧 자기 검열의 횟수도 줄어들고 자존감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 글은 화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용기가 없는 20대 사회초년생 내 또래 여성을 비롯한 모든 여성들을 위한 글이다. 우리 모두가 이 즐거운 변화에 동참하기를 바라며, 더 이상 화장하지 않는 여성들이 주목받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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