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김수연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국제질병분류에 등재 하는 것을 추진 중인 가운데, 의료계·학계 전문가들이 이에 대해 '섣부른 움직임'이라며 부작용을 우려했다.
9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통해 게임이용 장애의 국제적 인식 현황에 대해 발표한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기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며, WHO가 정의한 '게임 장애' 진단 기준 자체도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인터넷 게이밍 장애'는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이 우울증, 불안장애 등의 질환을 같이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 추가 연구가 필요한 사안이라 정신의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서도 질환으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WHO는 '중독'을 판단하는 핵심 잣대인 내성, 금단증상 등을 뺀 채 진단 기준만 제시한 채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려 한다"며 "WHO가 제대로 된 진단 기준을 만들기도 전에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겠다는 것인데, 정신과 질환의 경우 한번 만들어진 진단기준은 수정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움직임"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날 '누가 아직도 게임을 두려워 하는가'라는 주제로 발제한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할 경우, 게임 장애로 진단받은 사람들을 비정상인으로 분류하는 일종의 '낙인' 현상이 확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교수는 "게임 장애로 진단받은 사람들은 비정상인으로 간주 될 것"이라며 "사회의 주류에 낄 수 없는 사람들을 수십만명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며, 이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임장애가 만들어낼 새로운 문제들'을 주제로 발제한 심리학박사인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게임을 질병의 범주 안에서 다뤄지도록 하는 것이 최선책인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문화적 파급효과까지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게임 장애'에 대한 질병화가 이뤄지면, 이 진단을 받은 이들은 구직활동,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한 번 '게임장애'로 진단받은 사람에게는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현재 학회에서 이 사안에 대해 적극 대응하기 위해 '게임 장애 태스크포스'를 조직했다. WHO가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면, 한국에서도 이를 적용하기 위한 시도가 본격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학회는 영어 성명서 발표, 보건복지부 항의 방문 등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WHO은 오는 5월 국제질병분류의 11차 개정(ICD-11)을 앞두고 있다. ICD-11 초안에는 게임 장애가 '게임 사용 시 통제력이 약화 되는 행동 패턴'으로 규정돼 있다. 게임 장애 여부 진단기준으로는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 손상 △삶의 다른 관심사나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것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행동 패턴이 개인, 가족, 사회 등 중요한 영역에서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으로 최소 12개월 동안 나타날 때 게임 장애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9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ICD-11)안 초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게임문화재단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