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642)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이덕환의 과학세상] (642)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남도영 기자   namdo0@dt.co.kr |   입력: 2018-03-06 18:00
암호화폐 거래 투명성 '그림의 떡'
채굴꾼이 블록체인 관리 비상식적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이덕환의 과학세상] (642)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비이성적 투기 광풍에 휘말렸던 비트코인(암호화폐)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과 함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정반대의 주장이 격하게 부딪쳤다. 완전 퇴출 가능성까지 들먹이던 정부가 한 발 물러섰다. 다행히 투자 실명제와 거래소 관리의 강화로 들불처럼 번지던 투기도 가라앉고, 달아오르던 논란도 잠잠해졌다. 그러나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정체와 미래 가치에 대한 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암호화폐에서 드러난 문제들이 적지 않다. 암호화폐 거래의 투명성은 그림의 떡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암호화폐 발행자도 신뢰하기 어렵고, 불법·탈법을 일삼는 거래소의 농단도 심각하다. 투기·탈세·자금세탁·마약거래와 환차를 노린 재정거래에 악용될 가능성도 확인됐다. 무차별적인 해킹에 의한 피해도 걱정스럽다.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한 채굴 때문에 반(反)환경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암호화폐의 정체도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교환가치가 24시간 널뛰듯 출렁거리는 암호화폐에서 상식적인 '화폐'(통화)의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투자 가치가 보장되는 '재화'(상품)로 보기도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암호화폐를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형편이다. 기술이 더욱 발달하면 모든 혼란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낙관이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관계도 애매하다. 블록체인에 꼭 필요한 '채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 암호화폐라고 한다. 그렇다면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의 부산물로 격하되고, 블록체인을 다른 목적의 분산원장 관리에 활용하기는 어려워진다. 블록체인의 기록 관리를 투자자가 아닌 채굴꾼에게 맡기는 방식도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채굴에 필요한 비용이 치솟으면 블록체인은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획일적인 중앙집권식 규제를 거부하고, 국경을 초월한 세계화를 지향하는 비트코인의 철학에 대한 냉정한 고민도 필요하다. 분산·자율·세계화가 불합리한 규제를 일삼는 정부의 공권력과 탐욕스러운 기업에 대한 확실한 대안인지 분명하지 않다. 지역적 특수성을 용납하지 않는 '세계화폐'의 부작용도 무시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거래소'에 의존해야 하는 현재의 암호화폐가 진정한 분산·자율을 구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블록체인이 만들어내는 분산형 원장에 담긴 기록의 경직성과 한계도 경계해야 한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매력은 기록을 함부로 위조·변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록이 은행 거래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기록이 언제나 완벽한 것도 아니다. 모든 거래 당사자의 의견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기록은 환상일 뿐이다. 기록의 오류를 수정·보완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영원히 묻혀 져야 하는 기록도 있는 법이다. 블록체인이 기록의 불완전성과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한 기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암호화폐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인터넷의 경우에도 우리가 처음부터 미래 가치를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기술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는 법이다. 어쩔 수 없이 폐기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ICT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비트코인의 탄생 과정도 황당하다. '나카모토 사토시'가 논문 형식으로 편집해서 비트코인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다자간 파일공유(P2P)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글은 학술적인 '논문'이라고 할 수 없다. 엄격한 전문가 평가를 거쳐 공식 학술지에 게재된 것도 아니고, 비트코인의 사회적 효용성까지 완벽하게 분석해놓은 것도 아니다. ICT 기술의 구현에 한정된 순진한 엔지니어의 일방적인 논문은 복음서가 될 수 없다.

블록체인에 대한 과도한 평가도 경계해야 한다. 다보스포럼의 선정적인 '전망'과 미래 기술의 가치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미래 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근거가 불확실한 환상에서 시작된 투자는 공허한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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