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치용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발언대] 비트코인과 `분노의 포도`](http://contents.dt.co.kr/images/201803/2018030502103869607001[1].jpg "[발언대] 비트코인과 `분노의 포도`")
10년 가까이 지속된 대공황이 막을 내릴 무렵 존 스타인벡은 1930년대 은행과 가뭄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은 미국 오클라호마 출신의 농장노동자들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 겪는 고난과 불굴의 삶의 의지를 그린 소설 '분노의 포도'를 발표한다. 열악한 상황은 분노를 촉발하고, 분노는 마치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다.
가상통화 투자 실패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던 20대 한국의 젊은이가 끝내 비극적 결말을 맺는 사건이 잇따라 보도됐다. 언론들은 가상화폐의 광풍을 비극적 결말의 원인으로 꼽았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분명 1930년대 경제대공황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20~30대가 겪는 정신적 고통은 어떨까? 그들은 흙수저라 불리며 사회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예,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했고, 나아가 주택구입, 경력, 희망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상통화거래소 빗썸의 이용자 60%가 20~30대라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그들에게 비트코인은 절망의 시대에서 보는 마지막 희망의 불빛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절망을 뛰어 넘을 마지막 탈출구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청춘의 아픔을 기성세대는 공감하지 못했다. 정부는 가상화폐의 광풍이 몰고 올 통제시스템의 붕괴와 금융시장의 혼란만을 걱정했을 뿐이었다. 사회 곳곳에선 공공기관 채용비리와 자고 일어나면 뛰는 강남의 집 값, 보낼 유치원조차 없는 아이들의 부모가 발을 동동 거리는 사이에 분노의 포도는 점점 영글고 있었다. N포세대라는 말을 만든 기성세대는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각종 부조리로 사회시스템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는 반성과 회한의 눈물로 젊은 세대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공감해야 한다. 얼마나 아팠으면 죽음이 최상의 선택이 됐는지, 이제는 더 이상 청춘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소설 '분노의 포도' 마지막 장면은 아기를 사산하고 정신이상이 된 주인공의 여동생이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남자의 입에 자신의 젖을 물려 허기를 달래는 모습이 그려진다. 지치고 힘든 우리의 젊은 청춘에게 분노의 포도를 달래 줄 사랑과 희망의 젖을 물려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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