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영 칼럼] 유통업종 `워라밸`에 거는 기대

[심화영 칼럼] 유통업종 `워라밸`에 거는 기대
    입력: 2018-03-04 18:00
심화영 과학유통건설부장
[심화영 칼럼] 유통업종 `워라밸`에 거는 기대
심화영 과학유통건설부장

마르크스는 '인간은 노동을 통해 진정으로 자유로워 진다'고 했다. 인간은 창조적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대상화시킨다. 이러한 대상화된 세계에서 스스로를 직관하고 자신의 모습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때 노동은 단지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곳곳에서 노동 자체가 인간을 집어삼킨다는 소리가 들린다. 적극적 의미에서 인간의 자기실현 방식이던 노동이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다.

최근 소비침체와 실적악화에도 불구하고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유통 대기업들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 확산에 선제적으로 나서는 것은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유통업계는 일반 제조업 못지않게 고용 창출을 책임지고 있다. 유통분야는 또한 소비자와 접점이 닿아있는 서비스 업종이다. 돈보다 시간이 중요하고, 개인의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하는 트렌드를 먼저 읽었다.

신세계는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주 35시간 근무제는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국내에선 일부 벤처기업에서만 실시하는 선진적 제도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11월부터 PC온·오프제를 시행 중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유연한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시간 휴가제를 지난해 8월부터 도입해 시행해오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2시간 휴가제는 2시간 휴가를 총 4번 사용하면 개인 연차 하루가 소진되는 방식이다.

유통기업 오너 수장들의 신년 메시지를 보자. 전문경영인보다 그들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기업을 이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워라밸·욜로(You Only Live Once) 등 트렌드의 흐름을 빠르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직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조직문화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를 뿐 하나같이 '쉼을 통한 업무효율'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계 일각에선 근무시간 단축이 인건비를 줄이려는 꼼수라고 비판한다. 유통업종의 워라밸 실험을 비용절감을 위한 '스마트한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연장근로수당(통상임금의 1.5배) 등 근무시간에 따른 급여 인상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퍼주기식 복지보다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정책을 강화해 나가는 데 동의한다.

물론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단순 직원 복지 차원에서만 워라밸을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휴식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근무시간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고부가가치산업일수록 근무시간과 생산성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오랫동안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는 인식과 생산성으로 평가받는 것에 노사가 서로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칼퇴근하면 '공무원이냐'는 말부터 튀어나오는 상사를 봐왔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상사가 따져야 할 것은 퇴근시간이 아니라 직원의 아웃풋이 돼야 한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기업과 점심 약속을 하면 집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가 일상화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업무가 적지는 않다. 성과로 측정하기 때문이다.

칼릴 지브란은 '일이란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랑'이라고 했다. 그는 만일 우리가 무관심한 태도로 빵을 굽는다면 먹는 이의 허기를 반밖에 채우지 못할 쓰디쓴 빵을 만들 것이라 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긴 시간을 일하면서도 노동생산성은 꼴찌 수준이다.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우리의 두 배다. 일에 대한 몰입도가 서로 다른 탓이다. 우리 국민이 자신의 일을 스마트하고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할 '워라밸'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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