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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R&D 패러다임 전환 서둘러야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원장 

입력: 2018-01-10 18:00
[2018년 01월 11일자 23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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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R&D 패러다임 전환 서둘러야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원장
1867년 1월 9일, 일본 교토에서는 메이지 천황의 즉위식이 치러졌다. 메이지는 유럽, 미국 등을 롤모델로 하여 학제, 징병제 등의 개혁을 통해 부국강병에 매진했다. 메이지 유신이 본격화되는 순간이었다.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와 일본제국의 메이지 천황은 같은 해에 태어나 비슷한 나이에 즉위하고 친정에 들어가기 전 섭정기간이 있었다. 메이지와 마찬가지로 고종도 1875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이후 개혁에 앞장서는 등 많은 부분에서 둘은 닮았다.

개항이 늦었던 고종은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기민하게 대응하고자 외교, 통상은 물론 군사, 재정 등을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했다. 또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조직하고 증기군함의 구입을 추진하는 등 쇄락해 가는 대한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본래 아무 실권이 없었던 메이지는 군주권을 제한하는 요소가 있는 신분제 철폐, 보통교육 실시 등 과감한 개혁 조치들도 거부감 없이 수용했다. 그러나 500년 조선왕조를 수성해야 하는 고종은 개혁의 범위와 깊이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고종의 재위기간에 나라가 망했고, 메이지는 망한 나라를 강점했다. 1910년 경술국치였다.

그로부터 108년이 지나 우리는 2018년을 맞이했다. 2018년 대한민국호는 정치, 안보, 외교 분야 등에서 태풍, 쓰나미와 같은 격랑을 헤쳐 나가야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해양대순환과 같은 거대한 흐름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 경제, 산업 등 대한민국 모든 미래를 결정할 첫 번째 흐름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다. 우리의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다. 경제 전문가 해리덴터는 한국은 잃어버린 20년이 형용사로 붙는 일본보다 더 심각한 인구절벽에 직면할 것이라 경고했다. 두 번째 흐름은 초연결, 초지능의 4차 산업혁명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 변곡점으로서 4차 산업혁명은 기존 기술 경쟁력부터 산업생태계까지 송두리째 바꿔버릴 것이다.

이 두 흐름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시사점에 이른다. 개도국과 경쟁을 차치하고라도 노동 자본 등 요소 투입형 성장은 더 이상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추가 투입할 생산가능인력이 없다. 또한 1980년대 일본, 2000년대 대한민국, 그리고 2010년대 중국이 누려온 규모의 경제 효과도 4차 산업혁명이 가져 올 생산성 극대화에는 비할 것이 못된다. 그렇기에 정부도 생산성 주도형 성장 정책인 혁신성장을 기치로 내걸었다.

혁신성장은 R&D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대한민국 미래를 열어달라는 정부와 국민의 요청을 담고 있다. 사실 요소 투입형 성장에서 탈피해 생산성 주도형 성장으로 변모는 어제 오늘의 과제는 아니었다.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이라는 R&D 패러다임의 변화는 20년 가까이 반복적으로 시도돼 왔다. 그만큼 어렵고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인 것이다. 세계 역사에서 찾아 봤을 때도 이에 성공한 국가는 19세기 미국, 20세기 일본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기다려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58년생을 시작으로 베이비붐 세대들이 순차적으로 정년을 맞는다. 게다가 IMF 경제위기로 저 출산이 가속화된 1999년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2025년 이후면 유입마저도 급격히 줄어든다. 인구 감소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구 오너스 현상이 본격화할 것이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150년 전 한일역사에서 R&D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바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행태와 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기존의 R&D 기획, 관리, 평가의 틀은 지금껏 성공을 가져왔던 추격형 성장 모델의 철학을 토대로 형성됐다. 기존의 모델에서 상수만 조금씩 수정하는 방식으로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창의적 연구를 요구하면서 자율성을 주기 보다는 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이유로 더 많이 규제하지는 않았는지? 또 지원의 명분으로 더 많은 행정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원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존 연구관리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연구자에게 행정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고,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연구 환경 제공이 돼야 한다. 행정 부담 경감을 언택트 연구지원 서비스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케팅 용어인 언택트란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편안하게 물건을 살펴보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접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언택트가 방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략적이고 치밀한 분석과 설계를 통해 연구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지원서비스를 꼭 필요한 시점에 즉시 제공하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 또한 중요하다. 선도형 연구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를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방향을 설정하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까지 새로 도출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창의성 발현이 연구자로서 자존감을 갖고 연구에 몰입된 인격체일 때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우리가 내딛어야 하는 첫걸음은 연구자가 미래를 위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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