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솔개의 거짓말

김상노 한국전력공사 경영개선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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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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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솔개의 거짓말
김상노 한국전력공사 경영개선처 부장

제법 오래전부터 들어온 '혁신의 아이콘' 같은 이야기가 있다. "솔개는 40년쯤 살고 나면 깃털이 빠지고 발톱과 부리도 무뎌져 더 이상 사냥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때 솔개는 산 정상에 올라가서, 부리를 제스스로 바윗돌에 부딪히고 발톱을 쪼고 깃털을 뽑아낸다. 그 고통을 견디면 새로운 깃털과 날카로운 발톱, 단단한 부리가 다시 자라나서 30년을 더 산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이 내용을 20년 남짓한 회사생활을 하면서 '위기경영'때마다 수십 번은 들었다. 처음 느낀 놀라움과 감동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그때마다 솔개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환골탈태'를 되새기곤 했다.

그런데 동물생태학 전문가들은 어느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딱 잘라 말한다. 부리가 재생되는 것은 어떤 생명체에서도 보고된 바 없으며, 솔개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게다가 직접 확인해 본 솔개의 평균 수명은 25년에 불과했다. 아니, 어떻게 기초적인 사실도 틀린 내용이 수십 년 동안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들여진 것일까.

소위 '솔개 혁신론'은 한 경제신문사가 2005년 펴낸 책에 실린 '솔개의 장수비결'이라는 우화 칼럼이 그 시작이었다. 이 경이로운 이야기를 검찰총장과 은행장이 그해 신년사에서 힘주어 말했다. 이어서 기업인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영화두로 삼았고, 공무원들이 앞다퉈 월례조회에서 언급했다. MBA 출신의 컨설턴트가 강연 화면에 넣었다. 그럴 듯한 '카더라'식 이야기가 어느 순간 과학적 근거가 있는 절대적 사실로 굳어진 것이다.

'혁신'은 익숙한 것을 의심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까' '오래 전부터 들어왔으니까'라는 생각이 들면, 그런 고민을 불필요하게 여긴다. 어쩌면 우리는 겉으로는 혁신을 목 놓아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그것을 구호쯤으로만 여기고 있던 건 아닐까.

혁신은 어렵다. 솔개의 거짓말에 휘둘리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줄 알아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술년 새해에는 말뿐 아니라, 진짜로 모든 것을 탈바꿈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오래된 것을 버리고 새것을 펼치는 '제구포신'의 자세를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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