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가 R&D 프로세스, 디테일이 중요하다

여준구 KIST 로봇·미디어연구소장

  •  
  • 입력: 2017-12-19 18:00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시론] 국가 R&D 프로세스, 디테일이 중요하다
여준구 KIST 로봇·미디어연구소장
정부는 국가 R&D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국가 R&D 프로세스 개선안'을 마련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업에 우선 적용하고 추후 전체 국가 R&D 사업으로 확산할 예정이다. 연구자의 자율과 책임이 강조되고, 정부는 '관리와 통제'에서 '조력과 점검'으로 역할이 바뀐다고 한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그동안 연구 현장에서의 나온 의견들이 과기정책 공무원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노력으로 잘 반영된 모양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그 시행의 세밀한 부분까지 가다듬어지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원론적인 공감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세부적인 시행과 관련해 중요한 곳이 두 군데 있다. 한국연구재단 그리고 수주한 연구비를 관리하는 대학의 산학협력단이다.

연구재단은 기초, 원천, 거대과학 등 미래지향적 과학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미국의 경우 국립과학재단(NSF)이 기초 과학기술분야의 정책, 기획, 집행, 관리 등의 기능을 가진다. 우리와 비교하자면 NSF는 과기정통부와 KISTEP 그리고 한국연구재단의 일부 기능들이 합쳐진 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NSF 구성원의 약 30%는 분야별 연구현장에서 우수한 경험을 갖고 있는 과학자나 공학자다. 나머지 70%는 지원인력이다. 대부분의 정책, 기획, 집행, 관리 등 관련 주요 결정들이 30%에 해당되는 과학자나 공학자들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으며, 공무원 신분으로 안정적인 업무 추진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연구재단의 경우 각 분야별 전문가가 매우 부족하며, 공무원 신분도 아니다. 수행하는 역할도 정부 부처의 산하기관으로서 혹은 정부 정책을 집행 기관으로서 비중이 더 커 보인다. 정부 부처와 좀 더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미국의 NSF와 같은 기관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위해서는, 한국연구재단의 역할, 기능, 정부부처와의 관계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안으로는 한국연구재단의 구조를 학문 분야에 맞게 조정하고 내부 인력도 연구현장에 대한 경험이 있는 학문 분야별 전문가 초빙이 필요하다. 물론 대상이 되는 전문가 풀이 부족하거나 인력 충원의 재정적인 부담도 있겠지만, 전문 학문분야의 연구방향이나 주요 연구주제를 부처 공무원이나 재단 직원과 같은 비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또한 예산 규모에 맞추어 소수의 전문가들만 참여시켜 국가 R&D정책을 결정하는 경우에도 개인적인 편견이 존재할 수 있기에 위험성이 근본적으로 해소된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연구 경험이 많은,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교수나 연구자들을 일부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임기응변식 대응보다는 근원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단적인 예로 NSF의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관리비 예산 비중은 약 5%인데 반해 한국연구재단의 경우 1% 미만이다. 우리는 단돈 얼마를 투자하더라도 전문가의 조언과 분석자료를 참고한다. 하물며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이러한 중대한 일에서야 전문가 역할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둘째, 수주한 연구비를 관리하는 대학의 산학협력단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연구자의 자율과 책임이 강화되는 만큼 그 연구비를 관리하는 대학의 산학협력단 조직의 역할이나 기능도 강화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연구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연구프로세스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보면 연구 내용과 관련된 본질적인 부분과 연구비 사용이나 집행과 같은 재무적인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연구자의 자율과 책임이 강화되는 부분은 전자다. 재무적인 부분은 산학협력단에서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필자는 과거 20년 가까이 미국대학에서 교수로 재임했었다. 그동안 여러 연방정부 지원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단 한 번도 직접 감사를 받지 않았다. 연구비 집행에 있어서만큼은 대학의 해당 부서와 직원들이 책임 있게 관리해주고 정부 감사에 대한 대응도 모두 이들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대학들이 산학협력단 조직을 가지고 있으나 연구처장이 산학협력단장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산학협력단에서 관리하는 연구비의 대부분은 과기부, 연구재단, 산업부 등에서 지원 하는 반면 산학협력단에 대한 감독 부처는 교육부다. 뿐만 아니라 산학협력단 직원들의 상당수가 계약직으로 담당자가 자주 변경되거나 퇴직하는 등 업무의 연속성이나 전문성을 함양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예산 규모가 큰 대학은 산학협력단 조직이나 규정이 잘 정비되어 있는 반면 규모가 작은 대학은 그나마도 어려움이 많다.

개인적으로 '개혁'이라는 말보다는 '진화'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개혁은 계속 할 수 없다. 하지만 계속 진화할 수는 있다. 우리 정부의 연간 R&D 예산은 약 20조원이다. 정부의 R&D 투자는 계속 증가해, 과기부가 출범한 1998년과 비교하면 약 6배가 늘었다. 물론 미국 국립보건원(NIH)이란 한 기관의 일년 예산이 약 35조원인 것에 비하면 그 절대규모는 아직도 한참 모자란다. 그러나 GDP대비 투자비율로 보면 세계 최정상 수준이다. 그동안 정부는 연구재단, 산학협력단 등 국가 R&D 발전을 위해 필요한 큰 틀을 잘 잡아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이 디테일은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디테일이 진화를 결정한다. 이번 정부의 '국가 R&D 프로세스 개선' 노력이 이러한 디테일을 포함해 보다 발전적인 R&D 진화를 이끌어 내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