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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31) 수능 난이도 보도

채점전 입시학원 예측 틀릴때 더 많아
수험생에 영향 분석 없이 논란만 키워 

입력: 2017-12-19 18:00
[2017년 12월 20일자 15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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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31) 수능 난이도 보도

포항 지진으로 연기됐던 수능이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출제오류도 없었고, 채점도 순조롭게 끝났다. 그러나 고질적인 난이도 논란은 여전했다. 이번에도 언론은 불수능이라는 입시학원의 성급한 예측을 떠들썩하게 보도했다.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했다는 수능출제위원장의 공식입장은 완전히 묻혀버렸다. 채점결과는 달랐다. 전과목 만점자가 15명이나 나왔고, 10.03%의 수험생이 영어 1등급을 받았다. 불수능이 아니라 물수능이었다는 뜻이다.

난이도 논란은 수능이 처음 도입됐던 1993년부터 시작됐다. 11월의 2차 수능이 지나치게 쉽다는 입시학원의 분석은 엉터리였다. 80% 이상의 수험생들이 8월의 1차 수능보다 훨씬 낮은 성적을 받았다. 미국의 SAT을 벤치마킹해서 수험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던 교육전문가들과 교육부의 호언장담은 허풍이었다. 학생들만 쓸 데 없는 헛고생을 하고 말았다.

응시 기회가 한 차례로 줄어든 이후에도 난이도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이 가장 주목하는 연례행사가 돼버렸다. 해마다 '불수능'과 '물수능'을 널뛰듯 오가는 바람에 수험생들의 관심도 끝없이 증폭됐다. 난이도가 수험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언론은 입시학원의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을 여과 없이 요란스럽게 전달해주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입시학원의 수능 난이도 예측은 맞는 경우보다 틀리는 경우가 더 많다. 입시학원의 가채점 결과도 마찬가지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어가 작년보다 어려웠다는 것이 입시학원의 평가였다. 환율의 오버슈팅과 디지털 통신 시스템의 부호화에 대한 낯선 지문이 출제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엉터리 예측이었다. 국어의 1등급 기준은 작년보다 2점 올라갔고, 0.23%였던 만점자 비율은 0.61%로 올라갔다. 입시학원의 섣부른 예측은 믿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엉터리 난이도 보도에 의한 혼란은 심각하다. 2002년 수능에서는 모든 언론이 난이도가 낮아서 수험생들의 성적이 올라갈 것이라고 야단법석이었다. 자신만 상대적으로 성적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오해한 재수생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해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2002년 수능은 최악의 불수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는 거의 모든 수험생들의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엉터리 분석에 대해 책임을 진 입시학원이나 언론은 없었다. 입시학원의 엉터리 예측과 언론의 요란한 보도 때문에 자식을 잃어버린 학부모에게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현재의 수능에서는 모든 수험생들이 똑같은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난이도가 달라진다고 수험생들의 상대적인 순위가 크게 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불수능이라고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들이 실제로 더 고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물수능이라고 변별력이 크게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대학에서 수능을 활용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더욱이 수능을 치른 대부분의 수험생들에게 수능점수는 무용지물이다. 수능 성적을 반영하는 비율은 26.3%뿐이기 때문이다. 수능 난이도에 맞는 '입시전략'을 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난이도 논란은 정보 부족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학부모의 주머니를 노린 입시학원의 얄팍한 상술이고, 선정적인 보도에 재미를 붙인 무책임한 언론이 만들어내는 환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수능이 수험생들에게 공정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사회·과학·제2외국어에서는 선택과목에 따라 수험생들의 운명이 확실하게 달라진다. 실제로 제2외국어 응시자의 73.5%가 '아랍어'를 선택하고 있다. 선택과목들의 난이도 차이를 보정해준다는 핑계로 도입된 '표준점수'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표준점수가 원점수보다 더 공정하다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잦은 개정으로 누더기가 되어버린 엉터리 짝퉁 수능에 내재된 극단적인 불공정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절대평가로 바꾼다고 사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수능을 여러 차례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는 1993년의 아픈 경험을 망각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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