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계성 한국방송협회 대외협력부 국장
![[발언대] 미디어 복지, 라디오에 날개 달아주자](http://contents.dt.co.kr/images/201712/2017120102102269037001[1].jpg "[발언대] 미디어 복지, 라디오에 날개 달아주자")
그러나 라디오의 공공적 가치는 여전하다. 비가시적 매체라는 점 때문에 평가절하돼 왔지만 오히려 영상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강점이기도 하다. 집중을 요하는 다른 작업을 하면서도 정보와 오락을 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멀티태스킹 미디어다. 또한 라디오만큼 유연하게 현장성, 즉시성을 갖출 수 있는 매체도 드물다. 어떤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영상매체는 카메라와 중계차가 출동해야 하지만 라디오는 현장 관계자와의 전화연결만으로도 상세한 현장상황을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다. 특정 의제에 관해 라디오만큼 깊이 있는 실시간 토론이 가능한 방송 형태도 찾아보기 힘들다. 시의성과 깊이를 갖춘 라디오 시사토론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설정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가치는 어떠한가? 지난해 경주에서 5.8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통신망이 먹통이 됐을 때 라디오는 해당 지역 주민에게 요긴한 재난 정보를 제공한 거의 유일한 매체로 역할을 했다. 최근 큰 피해를 가져온 포항 지진을 겪으며 재난대비 매체의 활성화는 더욱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라디오는 광범위한 서비스 커버리지를 갖고, 수신자 수의 제한이 없으며, 자연재난 속에서도 강건하게 서비스가 제공되고, 저전력만으로도 수신이 가능하다. 휴대성 또한 월등히 높아 재난 매체로서는 타 매체와 비교할 수 없는 최강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커뮤니티를 유지 발전시키는 정서적 매체로서의 역할도 주목할 만하다. 라디오는 실시간으로 따뜻하게 교감하며 소통하는 매체로서 청취자가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시각장애인, 노인, 서비스업 종사자 등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계층에게도 라디오는 커뮤니티와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이토록 광범위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오랜 침체를 겪어온 라디오 방송에 최근 유의미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FM라디오 수신칩을 활성화해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스마트폰 자체가 라디오 수신기로 활용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라디오'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또한 이른바 AI스피커라고 명명되는 '음성이용자인터페이스(VUI : voice user interface)' 기술이 급부상하면서, 라디오가 시스템과 이용자가 상호소통하는 비서형 미디어로 확장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라디오 영역에서 기술혁신과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되고 있는 이 기회를 백분 살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방안에 관해 심도 있는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TV 시장의 부스러기를 활용하는 소극적인 진흥방식으로는 현 침체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다. 보호와 육성이 필요한 영역인 만큼 '라디오발전지원특별법'을 제정해 입법적 지원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또한 라디오의 미래만을 전문적으로 고민하고 독립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라디오 전담 진흥기구의 설치도 시급하다. 이러한 입법, 행정 차원의 지원을 통해 라디오만을 위한 별도의 시장 획정과 재허가 제도 등 제도 개선이 추진돼야 한다. 재원 안정화를 위한 과감하고 적극적인 규제개선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국민 미디어 복지의 향상을 위해 라디오에 날개를 달아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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