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진보다 '규모' 작아도 피해 더 커… 지진계 통한 지역별 '진도' 바로 알려야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이덕환의 과학세상] (628) 포항 지진](http://contents.dt.co.kr/images/201711/2017112902101422814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628) 포항 지진")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일어났다. 작년 9월 경주 지진에 이어 발생한 두 번째 강진이었다. 2만 7천 여 채가 넘는 주택이 파손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통째로 기울어져버린 아파트도 있다. 하필이면 수능 바로 전날 지진이 발생해서 혼란은 더욱 커졌다. 그나마 사망자가 없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가까이 있는 원자력발전소에도 아무 피해가 없었다. 기상청이 19초 만에 긴급 재난 문자를 발송해서 모처럼 제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지진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진학이라는 분야가 있지만 예측에 대해서는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진이라는 자연현상 자체가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지진이 발생하는 단층도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깊은 땅 속의 모든 단층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도 없다. 앞으로도 노력은 계속하겠지만 사정이 크게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지진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른 것이다. 지진이 깊은 땅 속의 단층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단순한 자연현상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바로 현대 과학기술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지진이 포세이돈처럼 고약한 신이나 악마의 저주 때문이라는 신화를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사라졌다. 겁에 질려서 허겁지겁 점집이나 무당을 찾는 사람들도 없어졌다. 우리의 어리석음과 죄악을 자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화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진학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규모'와 '진도'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지진이 시작된 진앙에서의 흔들림을 나타내는 '규모'는 기상청의 기록용으로 필요한 것이다. 실제 피해는 규모가 아니라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설치된 지진계를 통해 관측되는 '진도'로 결정된다. 서울의 주민들에게 270킬로미터나 떨어진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의 규모는 아무 의미가 없다. 기상청이 지역별 진도를 곧바로 알려주지 않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다.
포항의 경우에는 규모는 경주보다 작았지만, 현장에서의 진도는 경주보다 더 컸다. 실제로 포항의 진앙은 3~7킬로미터로 경주의 11킬로미터보다 훨씬 얕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층 구조도 단단한 화강암보다 훨씬 연약한 퇴적층이었다. 진동이 더 멀리까지 전달되고, 압축된 지하수가 모래층과 함께 밀려나와 지반이 내려앉게 되는 액상화 현상도 일어났다.
지진이 일어난 직후에 추정한 진앙의 위치와 규모는 잠정적인 것이다. 더 많은 지진계를 통해 관측한 정보를 활용한 정확한 추정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진앙의 위치와 규모를 수정한다고 기상청을 탓하는 보도는 부끄러운 것이다.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였다는 언론의 주장도 지나친 과장이다. 1978년 이후에도 규모 5.0 이상의 강진이 무려 10차례나 발생했다. 포항과 경주는 물론 상주(5.2 )·홍성(5.0)·삭주(5.3)에서도 일어났고, 동해·서해의 해저에서도 발생했다. 1998년까지 연평균 19.2회가 관측되던 규모 3.0 이상의 지진이 2016년까지는 연평균 68.9회로 늘어났다. 그동안 기상청이 더 많은 지진계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지진에 대한 역사 기록에도 넘쳐난다. 서기 2년부터 1904년까지 규모 4.9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440여 회나 일어났고, 규모 6.7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진도 15회나 발생했다. 평균 4년에 한 번씩 상당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기상청이 재빨리 문자를 발송한 것은 다행이다. 기상청이 국민안전처를 거치지 않고 통신사에 직접 요청하도록 만든 덕분이었다. 기상청과 같은 기술직 기관을 신뢰하는 행정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문자 발송 시간을 줄이고, 말로만 내진설계를 강조하고, 지진계의 수만 늘인다고 지진 피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설치해둔 지진계를 제대로 관리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건물과 시설을 보강하고, 안전한 대피시설을 마련하고, 대피훈련을 강화하는 일본의 진짜 지진 대비 정책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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