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TV 오전7시50분 인간극장
엄마, 장옥순(82). 자식들의 기억 속에 그녀는 늘 강했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지독한 가난 앞에서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던 엄마. 그래서 아들딸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마저 그녀를 여장부라 불렀다. 한평생 억척같이 일을 하며, 칠 남매를 시집 장가보냈고, 식구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집도 마련했다. 1층에는 여섯째(신재민/45)네 식구를, 2층에는 넷째(신승희/52)네 가족을 품으며 사는 옥순 씨. 이제 편히 쉴 일만 남았는데, 엄마는 기억 저 너머에서 길을 잃었다. 치매 판정을 받은 지 4년째. 똑같은 질문만 수십 번, 치매약을 거르는 날에는 작은 일에도 불같이 역정을 낸다. 그럴 때면 만사 제쳐 두고 엄마 앞으로 나와, 재롱을 부리는 중년의 아들딸들.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눈물은 삼키고, '이번에는 엄마에게 뭘 해줄까?' 궁리한다.
42년 전, 갑작스럽게 남편이 죽고 혼자가 된 옥순 씨. 당시 나이 마흔. 두 돌이 된 막내부터 스무 살 큰딸까지 줄줄이 딸린 자식만 일곱이었다. '아이들은 굶기지 말자'는 일념으로 태백에서 서울로 올라와, 칠 남매를 위해서라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막노동, 포장마차, 장사로 말하자면 냄비, 멸치, 그릇까지… 하지만 새벽같이 나가 일을 해도 육성회비 내는 건 늘 꼴찌였고, 여덟 식구는 좁은 단칸방에서 다닥다닥 붙어 잤다. 그 곤궁한 살림에도 사위까지 거뒀던 옥순 씨. 딸들이 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열고부터는 손주를 돌보며, 온종일 깻잎을 씻어 뒷바라지도 했다. 엄마의 헌신 덕분에 가게는 날로 번창했고, 칠 남매 모두 자리를 잡고 가정을 이뤘다. 긴 세월 빚진 마음, 이제야 갚을 형편이 됐는데, 엄마의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아들딸 돌아가며 흉보는 일은 다반사, 장소를 불문하고 불같이 역정을 내기도 했다. 검사 결과 경도 치매. 되돌릴 수 없는 병이었다.
슬픔에 빠져있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희미해지는 엄마의 기억을 하나라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친 칠 남매. 치매에 대한 공부는 물론 수시로 집에 들러 엄마의 말벗이 되어주고, 함께 운동을 다녔다. 가난 속에서 그랬듯,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며 더욱 끈끈해진 칠 남매. 하루에도 열댓 번씩 같은 말을 하는 엄마에게 짜증은커녕 표정 한번 일그러지지 않는 건, 어릴 적 나의 옹알이를 받아주었을 엄마이기 때문. 오히려 그 빚을 갚을 시간을 준 것 같아 고마울 뿐이라는데… 늦가을 어느 날, 통 크게 전세버스까지 대동해 여행길에 오르는 가족들. 칠 남매는 물론이고 사위에, 며느리 그리고 옥순 씨의 단짝, 안사돈까지- 엄마를 위해 준비한 '장옥순 여사의 기억 찾기 여행'이란다. 목적지는 옥순 씨가 젊은 시절을 보낸 강원도 태백! 과연 엄마는 그곳에서의 날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김지영기자 kj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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