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IT중기부장
![[안경애 칼럼] 정부 텍스트와 현장의 온도차](http://contents.dt.co.kr/images/201711/2017111302102260650001[1].jpg "[안경애 칼럼] 정부 텍스트와 현장의 온도차")
"개인정보 활용 규제를 풀어서 혁신성장에 속도를 낼지, 부작용을 고려해 개인정보 규제를 그대로 둬야 할지 청와대가 확실한 방향을 정해줬으면 합니다."
최근 만난 한 정부부처 공무원이 던진 말이다. 4차 산업혁명 대응전략의 첫걸음을 떼기 전, 공무원 입장에서 현 정부의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아 정책 강도와 방향 설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다.
국가 성장 큰 그림을 그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약 한달전 출범하고 대통령이 강도 높은 '혁신성장' 메시지를 던졌지만, 실제 정책을 펴야 하는 공무원들은 정부 정책방향에 대해 '감'을 못 잡겠다고 토로한다. 현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지키겠다고 강조해온 '가치' 중 혁신성장과 충돌하는 것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개인정보보호 이슈다. 우리나라는 혁신산업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너무 과도한 개인정보보호 규제를 만들다 보니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이슈가 가장 뜨거우면서 변화는 가장 더디다는 평가를 받는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려면 '빅데이터'라는 기초 재료가 필요한데, 개인정보보호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는 재료부터 못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전부터 개인정보와 관련해 활용보다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해 개인정보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도 내놨다. 그 기조가 바뀌었다고 정책 현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지 않으면 공무원들은 얼어붙어 있을 게 뻔하다.
거룩하지만 모호한 텍스트를 던져줘서는 정책 현장이 선뜻 움직이지 않는다. 정책 현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산업과 시장은 더더구나 변화를 체감할 길이 없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던진 키워드가 현장에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텍스트에서 구체적인 의지가 읽히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혁신성장을 외쳐도 '규제개선'과 '영리화',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 등 현 정부가 출범 전부터 터부시해온 일들에 대해 "필요하다면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영혼 없는 텍스트'로 읽힐 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공무원들에게서 길 잃은 듯한 표정을 종종 읽었다. 지난 정부 당시 극심한 소통부재 속에 공무원들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밑그림에 색을 칠하는 듯한 당혹스러운 상황들을 겪어야 했다. 중요한 정책의 방향에 대해 물어도 그들은 연두 업무보고 자리에서 장관과 대통령 사이에서 오간 얘기를 되풀이하는 게 전부였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동안 지켜온 방향을 수정하고 이를 대외에 분명히 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혁신성장 기회를 얻으려면 규제를 과감하게 깨고, 4차 산업의 재료인 양질의 데이터를 만드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위원회가 앞으로 가야 할 분명한 방향이 첫 회의에서 잡힌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10일 개최한 '지능형 디지털화(IDX) 테크 콘퍼런스'에 참가한 전문가들도 IDX의 출발은 데이터 확보인데 각 분야에서 우리가 가진 데이터가 너무 없다는 점에 공감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기업 네오플라이차이나를 이끄는 신동원 대표는 중국에서는 매년 70만명의 대학졸업자가 창업에 도전하는데, 법이 산업을 앞서지 않는 현지 분위기가 이를 가능케 한다고 진단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한 기술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 규제 때문에 시장 진입이 늦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외국계 IT기업 임원은 우리나라가 IT 인프라 선진국에서 사물인터넷(IoT) 후진국으로 지위가 격하됐다고 진단했다. IoT가 꽃을 피우려면 융합과 협업, 적극적인 규제완화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 모든 것에서 약하기 때문이다.
'탈원전'에서 보인 추진력이 '혁신성장'에서 발휘되길 바란다. 필요한 공론화 과정은 거치되 과감한 메시지 전달과 정책 추진을 통해 현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를 기대한다. 당장 내년 예산에 담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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