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음주 혈액 순환 돕지만 암 위험
에탄올, 세포치유 저해 '발암물질' 분류
에탄올, 세포치유 저해 '발암물질' 분류
![[이덕환의 과학세상] (623) 술(알코올)의 정체](http://contents.dt.co.kr/images/201710/2017102502101476029003[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623) 술(알코올)의 정체")
인류가 농경목축을 시작하던 1만 2000년 전부터 함께 해온 술은 화학적으로 대표적인 알코올인 에탄올을 물에 녹인 수용액이다. 대부분의 술은 포도당을 효모(이스트)로 발효시켜서 생산한다. 과일이나 곡류를 발효시킨 막걸리·정종·포도주와 같은 '발효주'도 있고, 발효주를 증류해서 만든 소주·위스키·보드카와 같은 '증류주'도 있다. 거의 모든 문화권이 독특한 방법으로 만든 전통술을 가지고 있다.
술은 강한 생리효과를 나타낸다. 적당한 양을 마시면 혈액 순환이 촉진되면서 얼굴이 붉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많이 마시면 판단이 흐려지고, 신체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너무 많이 마시면 무기력해지고, 균형감을 잃게 되고, 말이 어눌해진다. 자칫하면 의식이 흐려지고,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술의 판매와 소비를 제도적으로 관리한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하거나, 술을 마시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한다. 종교적으로 음주를 금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생활화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강제적인 금주령이 성공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술이 건강에 해로운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과학적으로 확인된 분명한 사실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술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이 330만 명이 넘는다. 전체 사망자의 6%가 술과 관련된 질병이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 뜻이다. 특히 과음은 심장병·고혈압·심장마비·간손상 등의 원인이 된다. 알코올 중독자의 평균 수명은 비음주자보다 10년 가까이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심장협회에서는 아예 음주를 시작하지 말 것을 권유하고 있다.
술과 에탄올이 인체에 암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도 분명하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는 1988년부터 술과 에탄올을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해왔다. 술은 대장암·식도암·구강암·위암·유방암·후두암·인두암·간암·췌장암 등 다양한 암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알코올이 세포에 발생한 손상의 치유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흡연자가 술을 마시는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알코올이 담배 연기에 들어있는 유해물질의 용매로 작용해서 세포에 더 큰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의 분석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에 등록된 20세 이상의 성인 2332만 명에 대한 5년 동안의 기록을 분석한 결과다. 흡연자의 경우에는 하루 소주 3잔(반병) 이상을 마시면 식도암 발생률이 5.6배나 높아지고, 위암·대장암은 40~70% 늘어난다. 하루 한두 잔의 소주를 마시는 가벼운 음주자의 경우에도 식도암 발생률은 3.1배, 위암과 대장암은 30~40% 늘어난다.
물론 술이 건강에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두 잔의 가벼운 음주가 혈액 순환에 도움을 주어서 심장마비와 같은 심장질환이나 당뇨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근거도 확인됐다. 적포도주나 막걸리에 건강에 소량이기는 하지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생리활성 물질이 들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화학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개인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건강에 좋은 물질과 나쁜 물질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도 적당한 양을 섭취하면 약이 될 수도 있고,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지나치게 많은 양을 장기간 섭취하면 독이 돼버린다. 술도 예외가 아니다. 유전적 이유로 암이 걱정되면 철저한 금주가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심혈관계 질병이 걱정되면 가벼운 음주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술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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