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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년후의 `상식`이 바뀌었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 

입력: 2017-10-18 18:00
[2017년 10월 19일자 23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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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년후의 `상식`이 바뀌었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
지난 추석연휴 기간중 자료수집을 위해 일본 도쿄의 서점 몇 군데를 들를 기회가 있었다. 2년만에 들러 놀란 것은, 나의 관심사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정년 후와 관련된 책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정년후'라는 제목의 문고판 단행본이 20만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고, '정년 후의 상식이 바뀌었다'는 특집을 게재한 월간 문예춘추를 비롯해 다른 월간지, 주간지들도 비슷한 특집을 게재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정년후 관련 1차 출판붐이 있었던 시기는, 일본의 베이비붐세대(1947~50년생)가 60세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있던, 2003~5년경이었다. 물론 이번은 그때의 출판붐과 비교하면 붐이라고 할 정도의 규모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다만, 주목이 되는 것은 단행본이나 잡지들의 특집에서 취급하고 있는 내용이다. 2003~5년의 출판붐 때에는 노후자금 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데 비해 이번에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정년 후에 뭘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선, 퇴직후에 갈 곳이 없어 고민하는 남성퇴직자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집에 있으면 마누라로부터 귀찮은 존재 취급을 받는다. 도서관에 가보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시니어들이 이미 좌석을 점령하고 있고, 신문코너에서는 조간지를 서로 먼저 보려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취미생활이라도 시작해보려고 하지만 60세 넘어 새롭게 취미를 갖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동네 사람들 모임에 참가해보려 해도 회사인간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커피집에 출근하는 게 매일 매일의 일과라는 것이다.

지금의 일본 고령세대들은 고성장기에 직장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60세 정년은 확실하게 보장돼 있었다. 연금제도도 우리보다 일찍 도입돼 있어서 웬만한 직장인이면 공적, 사적연금으로 20만엔(약 200만원) 이상은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스스로 저축해둔 돈을 약간만 더 하면 최소생활비 정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퇴직 후에는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퇴직 후의 인생이 이렇게 길고, 할 일이 없다는 게 이렇게 괴로울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정년후 대비로 노후자금문제, 건강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 자신이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현역세대들은 선배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40대후반, 늦어도 50대 초반부터는 돈이 되든, 안되든 퇴직후 무슨 일을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랄까 반성의 분위기가 이번 정년관련 출판붐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다.

"직장인 연수에 강사로 가보면 정년 후에 대비해서 자기 나름의 장래상을 구상하고 있는 직장인은 참가자의 1할 미만이다. 2할 정도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7할 정도는 막연한 불안감과 관심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20만부 베스트셀러 '정년후'의 저자 구스노키 컨설턴트의 말이다. 그는 이들 직장인에게 퇴직후 자신의 형편에 맞게 수입을 얻는 일, 사회공헌적인 일, 취미를 살릴 수 있는 일들을 찾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사회의 이번 정년퇴직관련 출판붐을 보면서 문득 지난 여름 국내 퇴직공무원들의 퇴직수기를 읽었던 일이 생각났다. 당시 한 공공기관으로부터 퇴직수기공모 심사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105명이 응모한 퇴직수기를 읽었다. 읽기 전에는, 이분들이 60세정년이 보장돼 있고 최소생활비 정도는 공무원연금으로 받는 분들이기 때문에,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큰 걱정은 없는 분들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읽어본 수기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소일거리가 없고 갈 곳이 없어서 힘들어했던 경험, 그런 힘든 기간을 거쳐 일을 찾았을 때의 기뻤던 경험을 소개하고 있었다.

한 전직교장선생님은 1년동안 소일거리가 없어 힘들게 지내다가, 60넘은 나이에, 3차례의 도전 끝에 이용사자격증을 취득해 이용원을 차렸다. 약간의 수입을 올리면서 요양원, 상이군경회를 찾아 이발봉사를 하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 행복하다는 것이다. 노인 주간보호센터 보조원으로 근무하면서 후기고령자들을 돌봐주는 전직 통계직공무원, 농협지점의 회의실에 마을사랑방을 만들어 주민들의 대화장소, 교육장소로 제공하고 있는 전직교감선생님도 있었다. 이런 사례들을 읽으며 티베트종교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말이 생각났다. "부유한 나라에서 고통과 분노의 정도가 더 심한 건 물질적 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내가 남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이나 '내가 사회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 이상 갖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다." 정부고위직에서 퇴직한 한 선배로부터 들은 말도 생각이 났다. 이 분은 아침에 잠에서 깨면 침대에서 내려오기 전에 "오늘은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보고 내려온다면서, "퇴직하고나니 쓸모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 가장 서글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도 100세시대를 맞이해 이런 고민을 하는 고령세대들에게 소일거리를 줄 수 있는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또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내가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누가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가기 위해 현역시절부터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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