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출몰 '붉은불개미' 살인독 아냐
번식력 뛰어나 농작물·가축 피해 우려
번식력 뛰어나 농작물·가축 피해 우려
![[이덕환의 과학세상] (622) 살인개미](http://contents.dt.co.kr/images/201710/2017101802101476788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622) 살인개미")
'한 해 평균 8만 명이 물리고, 100명이 사망한다'는 검역당국의 당초 발표는 인터넷을 떠돌던 엉터리 정보였다. 사실 감만부두에서 발견된 개미는 더듬이에 10개의 마디가 있는 '열마디개미속'으로 분류되는 280여 종의 '불개미'의 일종인 '붉은불개미'(red imported fire ant)였다.
대부분의 개미는 자신을 괴롭히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신맛이 나는 개미산(폼산)을 내뿜는다. 그런데 크기가 3~6㎜인 작은 불개미들은 살충·살균 효과를 내는 '솔레놉신'이라는 알칼로이드를 사용한다. 불개미에 물리면 불에 덴 것 같은 통증이 생기는 것도 솔레놉신 때문이다. 염증이나 발진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과민성 쇼크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붉은불개미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한 해 한두 명에 불과하다. 붉은불개미가 '살인독개미'라는 방역당국의 당초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었다. 그런데도 선정적인 언론은 여전히 '살인독개미'를 고집하고 있다.
실제로 개미박사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붉은불개미의 독성지수는 1.2로 말벌이나 꿀벌의 2.0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살인개미'나 '독개미'라는 요란스러운 이름은 독성지수가 3.0인 붉은수확개미나 4.0인 총알개미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만 매년 1400만 명이 붉은불개미에 물리지만 병원을 찾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경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토종 왕침개미도 붉은불개미와 비슷한 정도의 독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붉은불개미의 유입을 반가워할 수는 없다. 붉은불개미는 1930년 고향인 남미에서 목재 운반선을 통해 플로리다로 건너와 미국에 토착화돼버렸다. 번식력과 적응력이 뛰어난 붉은불개미는 농작물과 가축에게 피해를 주고, 거대한 규모의 개미집을 지어서 농경지를 망쳐놓기도 한다. 도시의 아스팔트 틈새에도 서식하고, 심지어 가전제품 속에 군락을 만들기도 한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서는 이미 토종 개미의 70%가 붉은불개미에게 밀려나 버렸다. 붉은불개미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가 한 해 6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은 태평양 연안의 미국·오스트레일리아·대만·중국 등 태평양 연안의 14개국으로 확산된 붉은불개미를 '100대 악성 침입외래종'으로 지정해놓았다. 치명적인 인체 독성이 아니라 농작물·가축·생태계에 미치는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1996년 농작물과 가축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규제병해충'으로 지정했다. 일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 때문에 무작정 '위해우려종'으로 지정해야 하는지는 고민해볼 일이다.
물론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유해 외래종의 침입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유해 외래종의 침입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새로운 서식지에 적응해야 하는 생물들에게 인간이 만들어놓은 국경은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유해 외래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외래종의 침입을 감시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선박·비행기·화물에 대한 전수조사와 완벽한 방역작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유해 외래종이 발견되었다고 무작정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 차분하게 합리적인 퇴치 방안을 마련해서 신중하게 대응하면 된다. 살충제 달걀 소동에서 분명하게 확인했듯이 정부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불개미'의 정확한 정체도 파악하지 못해서 인터넷에 떠도는 엉터리 정보나 퍼 나르고, 8㎜ 크기의 여왕개미를 찾겠다고 군사작전을 펼치듯이 아스팔트를 파헤치는 수준의 전문성으로는 외래종의 침입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가진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기본적인 능력과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