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식품으로 건강 해친 소비자 없어
유해물질 허용기준 정확한 인식 필요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유해물질 허용기준 정확한 인식 필요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이덕환의 과학세상] (621) 가공식품의 안전성](http://contents.dt.co.kr/images/201710/2017101102101476788002[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621) 가공식품의 안전성")
식품점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화려하고 다양한 가공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가공식품이 건강에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어설픈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공식품 때문에 실제로 건강을 해친 소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모든 가공식품을 포기해버리면 건강한 식생활이 불가능해진다. 근거가 불확실한 정보 때문에 불안에 떨기보다는 가공식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지혜가 훨씬 더 중요하다.
대량으로 생산한 농수축산물을 판매할 목적으로 가공·변형·조리·포장한 가공식품을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도록 관리해주는 것은 현대 국가의 막중한 책무다. 우리도 식품위생법·식품안전기본법 등의 법률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한 여러 정부기관들이 가공식품의 재료·가공·품질과 유통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심지어 세계보건기구(WHO)·식량농업기구(FAO) 등과 같은 식품 안전 분야의 국제기구와 협력하는 제도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우리의 식품산업이 가장 이상적인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소비자의 안전을 무시하거나 불안을 부추겨서 이익을 챙기려는 비윤리적인 식품기업이 적지 않다. 정부의 안전 관리가 완벽한 것도 아니다. 제도가 허술한 부분도 있고, 정부 기관의 전문성과 행정력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불량식품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의 관리를 무작정 불신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언론과 시민단체의 전문성과 능력을 강화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불안을 부추기는 비윤리적인 기업의 '공포 마케팅'이나 무책임한 언론의 '황색 저널리즘'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포 마케팅이나 황색 저널리즘은 대부분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양의 가공식품을 지속적으로 섭취했을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만성 독성'을 들먹인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 결국 그런 주장은 소비자의 불안만 증폭시킨 후에 흐지부지되어 잊혀져버리게 된다.
식품첨가물에 대한 논란도 대부분 무의미한 것이다. '식품첨가물'은 가공식품에서 사용하는 '양념'을 뜻하는 법률 용어다. 단맛을 내는 감미료, 원하는 색깔을 내도록 해주는 착색제, 원하지 않는 색깔을 제거해주는 표백제, 식품의 산화를 방지해주고 유해 미생물을 제거해주는 보존제 등이 모두 식품첨가물이다. 양념을 넣지 않고 음식을 조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으면 가공식품을 생산할 수는 없다. 가공식품을 '식품첨가물 범벅'이라고 한다면, 가정에서 조리한 음식도 '양념 범벅'인 셈이다.
가공식품에 사용하는 식품첨가물은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한다. 현재 식약처의 '식품첨가물공전'에 등록된 식품첨가물은 모두 640여 종이고, 일부 위해성이 의심되는 식품첨가물에 대해서는 사용량을 제한하고 있다. 특히 인체 발암성이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된 식품첨가물은 '공전'에서 제외시키거나 사용량을 더욱 엄격하게 규제한다.
유해물질의 '허용기준'에 대한 정확한 인식도 필요하다. 유해물질의 허용기준은 인체 유해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고속도로의 속도제한과 마찬가지로 유해물질의 농도가 허용기준을 넘었다고 반드시 위험하고, 허용기준을 넘지 않았다고 반드시 안전한 것이 아니다. 허용기준은 가공식품의 생산과 유통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준일 뿐이다.
자연에서 생산되는 '천연' 식품과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전통' 식품만 안전하다는 극단적인 자연·생태주의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천연 식품에도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는 유해물질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전통 식품에 대한 안전성이 현대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된 경우도 많지 않다.
아무리 좋은 가공식품이라도 장기간에 걸쳐 지나치게 많은 양을 섭취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극미량의 유해물질이 들어있는 가공식품도 적절한 양을 섭취하면 오히려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무작정 가공식품을 탓하기보다 과식과 편식을 피해야 한다는 상식을 기억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자세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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